떼제에서 보내는 온전한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Radek과 수사님께도 선물을 드리는 날이라 기대가 됐다. 내일은 아침기도가 없으니 아침기도도 마지막이다. 이제는 침묵의 시간도 편안하고 아침기도시간도 길지 않다. 적응이 된 것이다. 어딘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우리를 다소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것에서 경계할 점이 있지만 우리 마음 속에 확실한 안정감을 준다. 떼제에서의 아침도 그랬다. 안정적이고 평화롭다. 또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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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아침을 먹고 방에 돌아와 라덱에게 줄 선물에 하나하나 코멘트를 달기 시작한다. 이건 이렇게 먹어야되고 저건 저렇게 사용해야되고 이건 무슨 효과가 있고 등등. 물론 그냥 줘도 그가 어련히 알아서 잘 쓸까 싶지만 그래도 정성이 그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어 작은 코멘트를 하나하나 적었다. 제법 그럴듯 하다. 엽서까지 작성해 함께 넣고 지퍼백을 둘둘 말아 스티커를 붙이니 나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뭔가 빠진 것 같다. 아! 한글이 빠졌다. 그의 이름을 한글로 크게 써 제일 앞에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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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들고 덜렁덜렁 source의 문으로 향한다. 어라. 문이 열려있다. 가끔씩 이곳에서 일하는 외부인들이 문을 연다. Radek이 미리 온건지, 다른 사람들이 문을 연건지 알 수가 없어서 서성인다. 저 멀리서 흑인 아이들 3명이 왔다. 영어 할 수 있냐 물어보니 조금 한단다. 두번째 문이 잠겨있을 수도 있다고 알아두라고 말하고 싶은데 영어를 정말 조금만 하는지 영 못 알아듣는 눈치다. 손짓발짓해서 결론은 그들이 나에게 source가 6시까지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끝났다. 안되겠다 싶어 나도 Thank you하고 그들이 You’re welcome 하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됐다. 뭔가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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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5분까지 라덱을 기다리다가 왠지 안에 있겠다 싶어 들어가니 이미 호숫가를 걷고있다. 오늘 좀 일찍 왔단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가 나에게 카드를 건넨다. 어제 이메일을 알려달라고 할 때 내일 줄게 있으니 그 때 알려준다고 했었는데 바로 이 카드였던 모양이다. 나도 그에게 선물을 건냈다. 예상 못했는지 몹시 놀란다. 내가 적은 코멘트들이 투명한 지퍼백을 통해 살짝살짝 보인다. 읽는 그가 즐거워보인다. 나도 행복하다. 지금 열어봐도 된다고하니 이대로 들고가 다음주에 폴란드에 가서 가족들 앞에서 열어보겠단다. 많이 고마워한다. 나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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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지막 날인걸 알았는지 아무도 source에 없다. 우리는 처음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호숫가를 돌며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아침마다 둘이서 이 호수를 산책하며 사람들에게 침묵을 지키게 하는 일을 맡았었기에 우리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유럽 어딘가에 내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세계가 나와 가까이 있는 기분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 시대를 살고있다.
점심기도를 위해 들어간 교회에서 오늘도 역시 남편을 찾기가 힘이 든다. 일찌감찌 포기하고 자리를 잡았다. 뒤늦게 저 앞에 있는 남편이 보이는데 옮길 여력이 되지 않는다. 오늘도 각자 예배를 드리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나니 2시. 방에 가서 수사님께 드릴 선물을 남편 백팩에 숨긴다. 만나자마자 드리면 부담스러워하실까 싶어 헤어지기 전에 안겨드리고 올 요량이다. 방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챙기고나니 벌써 2시 반, 수사님을 뵈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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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모라다를 통해 3분 뒤 버스정류장에서 만나자는 전화 통화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우리나라의 모닝과 같은 작은 경차를 타고 수사님이 나타나셨다. 오늘 번화가에서 안경을 맞출 일이 있다고 하신다. 잠시 나가시는 길에 우리도 따라 나섰다. 작은 차로 달리는 길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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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uny 클뤼니에 도착하니 Paris와는 완전히 다르다. 수사님이 안경을 맞추실 동안 우리는 잠시 구경에 나섰다. 골목골목이 옛 정취로 가득하다. 20분 정도 돌아보고 오니 수사님의 안경이 막바지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안경디자인에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데 안경사가 옆에 또 다른 방이 있다며 거길 구경해보고 오란다. 가보니 완전 신세계다. 이것저것 재밌는 안경을 써보며 깔깔댄다. 시골 안경점이 이 정도라니. 구경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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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서 안경을 맞추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지 설명을 해주신 수사님께서 이 동네도 설명해 주시겠다며 앞장서신다. 클뤼니는 중세시대 가장 큰 수도원과 성당이 있었던 곳으로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단다. 또한 이 곳의 수도원장 중 5명이 가톨릭의 성인이 되었고 가장 위대한 6번째 원장은 그의 과거 때문에 성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오늘날까지 6명 중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란다. 벽의 돌들에 왜 시멘트를 바르는지, 성당 안에 있는 세례대와 제대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콘의 디테일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설명을 들으니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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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님은 역사를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았고 또 존중하시는 것 같았다. 그 옛날 성당이 있었던 터의 돌들을 보시며 수백년 간 노랫소리를 들어온 돌 들이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많이 다가왔다. 우리가 신혼여행을 떼제로 왔다는 것을 의식하셨는지 포토존이 될 만한 곳에서는 직접 사진을 찍어주셨고 우리도 수사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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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여러곳을 다니며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특히 타르트와 포도주가 기억에 남는다. 포도주 가게의 주인 분과 잘 아시는지 시음과 저장창고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포도주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배우고, 프랑스에서 포도주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넓은 지역 범위의 이름을 가진 포도주보다 좁은 지역의 포도주가 훨씬 비싸다는 것. 다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정직하게 유통하고 만든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도 시음해 본 포도주를 한 병 샀다. 파리에 가서 다시 한 번 맛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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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트를 들고 옛 귀족이 별장으로 썼던 성에 갔다. 비록 구름이 많았지만 떼제와 마실리, 클뤼니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프랑스식 타르트와 누군가 두고 간 와인을 맛보는 행운을 얻었다. 이곳에 와서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몰랐는데. 가난한 여행을 하는 우리를 위한 수사님의 배려였다. 모든 손님들에게 이렇게 해 주실 수는 없을텐데, 저녁식사 때의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당신의 최선으로 우리가 ‘신혼여행’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우리가 저녁식사 때 김치와 요리, 빵을 엄청나게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라셨던 것 같기도 하다. 뭔가 여성으로써 조금 부끄럽긴한데 그래도 좋다. 사실 그게 나다. 너무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떼제로 다시 돌아왔다. 차에서 내리면서 선물을 드리고 왔는데 열어보실 때 기쁘셨으면 좋겠다.
이번 주 순례자들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토마토 파스타였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형태의 파스타는 아니지만 떼제에서 이 정도면 레스토랑 수준이다. 모두가 맛있게 싹싹 먹는다. extra food가 나왔을 때 엄청나게 많은 10대들이 통을 든 사람에게 우루루 몰려들어서 그가 도망을 다녀야 했을 정도로 다들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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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우리는 일찍 교회에 도착해 맨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잠시 잠들고 오빠는 책을 읽었다. 그런데 너무 일찍 왔나보다. 오늘은 함께 촛불로 기도를 드리는 날인데 우리는 미처 촛불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 이곳에 와서 십자가 기도는 못 해도 촛불기도는 하고 싶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비가 내리는 밖으로 뛰어나가 촛불을 찾아보는데 없었다. 돌아와보니 남편은 초를 들고 있다. 근데 자기꺼만 들고있다. 물론 옆에 수사님이 오빠한테 주신거라고 했는데 뭔가 배신감이 들었다. 시무룩해 하는 나의 기운이 느껴졌는지 옆에 여학생의 자기 초를 주려고 한다. 눈이 동그래져서 있는데 갑자기 어떤 여성 분이 다가와 내 뒤에 안 보이는 곳에서 초를 꺼내서 주신다. 이 곳을 잘 아는 분인 것 같다. 덕분에 나도 촛불기도를 함께 드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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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를 가만히 바라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 한 주 동안 이곳에서 너무너무 잘 지냈다. 노래하며 몰입하는데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초를 주신 분은 바로 둘째날 나를 시험들게 하셨던 음정이 다소 불안했던 그 분이었다. 눈물이 흘렀다. 그 분 덕분에 나는 오늘 함께 촛불을 들 수 있었다. 그 분의 목소리가 이제는 거슬리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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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와서 내가 시험 들었던 것은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흑인 10대들이었다. 수사님께 여쭤보았을 때 마음공부 이야기를 하시며 덧붙이시길, 그 아이들은 생드니라는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라고. 생드니는 지금도 자동차가 불타고 치안이 불안하고 매우 어지러운 그런 곳인데 그 와중에 아이들이 여기에 와서 하루 3차례 함께 침묵하고 다소 부족한 듯한 떼제의 밥을 맛있게 먹고 기도하며 성경공부에 참여하고 있는거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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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생드니는 어제 한국인 관광객들이 강도를 맞은 곳이다. 기사를 보니 가관도 아니다. 정말 무서운 곳이다. 거기서 온 아이들이 이제는 밤마다 수사님과 또 지역에서 오신 사제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싶어서 줄을 서고 있었다. 이제야 알게됐다. 하나님은 나에게 필요한 고민과 시험을 주시고 끝내, 알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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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많이 생각하고 기대했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기도하고 노래하고 침묵했다. 마음은 평온했고 평안했고 평화로웠다. 근데 그게 그렇게 특별했다.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되도록 빨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떼제에서의 마지막 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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