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오늘은 에펠탑을 보러가는 날이다. 어제 삶던 돼지고기(라고 쓰고 족발이라고 읽는다)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3시간을 넘게 삶았는데도 아직 완벽해보이지 않는다. 일찍 일어난 남편이 1시간을 더 삶았다. 드디어 조금 먹어본다. 음, 정말 닭고기 같이 생겼군. 이럴 줄 알았으면 닭고기를 살걸 그랬다. 아마 그쪽이 좀 더 먹기 쉽고 양도 많았을 것 같다. 오늘의 교훈이다. 삶아진 돼지껍데기는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 그래도 많이 먹지는 못한다. 아직 안 익은 부위가 있어 익은 부분 위주로 먹고 다시 냄비에 보관한다. 저녁에 고기를 응용한 요리를 해 봐야겠다.
오늘 아침도 여유 있게 외출 준비를 한다. 당장 에펠탑부터 보러가고 싶지만 낮과 밤의 풍경을 모두 보기위해 시간 맞추어 갈 참이다. 대신 낮 시간에는 어제 휴관이었던 오르세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집 근처에 한 번에 오르세로 가는 버스가 있다. 남편을 뽈뽈뽈 쫓아가 버스에 오른다. 버스 창문으로 에펠탑이 보인다. 저녁에 가야지. 신이 난다.
목적지에 내리니 길 건너 오르세미술관이 보인다. 루브르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그래도 기차역을 개조한 건물이라 그런지 운치가 있다. 들어가서 주위를 둘러보니 좀 더 우리가 아는 미술관 같은 느낌이 강하다. 어제 너무 하나씩 꼼꼼히 의미를 따져가며 보다가 몹시 지쳤던 경험을 살려 오늘은 대충대충 보기로 한다. 설렁설렁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작품 앞에 멈추어 서서 한참을 본다. 한결 낫다.
2층에 올라가니 고흐의 작품을 모아둔 방이 있다. 고흐의 자화상 앞에 발을 멈춘다. 그의 전시실 가장 중앙에 작품이 있다. 하늘색과 민트색 배경으로 그려진 그의 자화상 작품에는 흡입력이 있다. 그의 자화상을 중심으로 구불거리는 배경의 선들을 바라본다. 끝내 귀를 잘라버린 그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도 같고, 어떻게든 살고 싶은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인 것도 같다. 놀랍도록 세심히 표현한 그의 눈동자와 달리 자켓의 두 번째 단추는 엄청나게 허술한 동그라미로 그려졌다. 포커스가 그의 얼굴로 향한다. 눈을 뗄 수 없다.
너무 좋아서 작품이 그려진 기념품을 사러 shop에 간다. 냉장고 자석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자석은 없다. 할 수 없이 엽서만 산다. 이번 여행에서 산 유일한 엽서다. 아쉽게도 엽서에는 원본만큼의 흡입력은 없다. 다시 작품을 보러갔다. 보고 또 봐도 마음에 들어오는 그림이다. 이 느낌을 가지고 가기로 한다.
어느덧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오늘은 우리가 다니는 Mozart 빵집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와 버스를 탔기 때문에 미처 점심을 준비해오지 못했다. 오르세미술관 근처의 카페들은 역시 너무 비싸다. 다음 목적지인 로댕박물관은 상대적으로 저렴할 것 같아 그 쪽으로 걸어가 본다. 샌드위치점 하나가 물망에 올랐다. 나쁘지 않다. 조금 더 걸어가 보자. 코너에 있는 Gosselin이라는 빵집이 하나 보인다. 여기다. 우리와 딱 맞는 곳! 크로크무슈 하나와 치즈케이크처럼 보이는 Flan Nature 라는 파이를 하나 주문한다. 진열대 유리 너머 보이는 크로크무슈가 두 개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게 하나의 빵이었다. 그러고도 5천원이 넘지 않는다. 남편과 어깨춤을 춘다. 신이 나서 덩실덩실 마음의 춤을 추는 우리를 보고 점원이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다. 기분이 좋다.
빵을 따뜻하게 데워 품 안에 넣고 로댕박물관으로 향했다. 생각하는 사람 The Thinker 앞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이 재작년 이 벤치에서 나와 결혼 준비를 하며 박터지게 전화로 싸웠었다고 했다. (물론 그때도 거의 일방적으로 내가 화를 냈다. 미안 ㅠㅠ) 그러면서도 같이 여기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는데 1년 반이 지나 함께 왔다. 감회가 너무너무 새롭다.
따뜻하게 포장해 온 빵을 꺼내 벤치에 식탁을 꾸몄다. 크로크무슈를 한 입 먹는데 신세계다. 이렇게 부드럽고 느끼하지 않으면서 양도 많은 빵을 우리가 샀다니! 살 때도 신났는데 먹을 때는 더 신났다. 돈을 썼는데 번 느낌이다. 또 다른 빵인 Flan Nature는 먹고 보니 에그 타르트였다. 물컹하는 느낌과 함께 입 안 가득 계란과 달콤한 시럽이 퍼진다. 한국에서도 에그 타르트를 좋아했는데 ‘에그’보다는 ‘타르트’에 초점이 맞추어진 느낌이었다. 한 입 물면 바삭 하달까. 오늘 먹은 에그 타르트는 먹을 때마다 물방울을 입 안에 머금는 듯한 소리가 났다. 재밌다.
배를 든든히 한 뒤 손을 잡고 정원을 거닐며 조각상을 본다.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똑같이 연기를 해보기도하고 지옥의 문 앞에서 그 디테일에 감탄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리의 가슴을 치는 작품을 만난다. ‘깔레의 시민들’. 카이저가 이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해 드라마를 위해 각색한 스토리를 대략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깔레라는 마을의 모든 시민들을 위협하던 상대편의 유일한 협상조건은 6명이 자진하여 목숨을 내놓으면 나머지는 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깔레의 모든 시민들이 모여 희생자를 뽑는데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 때 유스땃슈라는 한 사람이 자진하여 다른 사람들을 선동했다. 그래서 자신을 포함하여 7명을 모았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떠나려고 모였을 때 어쩐지 처음으로 나선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지원자들과 시민들이 웅성웅성댈 때 그가 자결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흔들리는 나머지 6명의 마음을 붙잡아주기 위해 스스로를 먼저 희생한 것이다. 그래서 남은 6명은 다소 담담하게 길을 떠났고 그 표정이 그림에 잘 나타나있다. 카이저의 이야기에서 그들은, 결국 죽지 않았다.
로댕은 카이저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좀 더 정확히 알고 글을 쓰면 좋겠지만 지금 글을 쓰는 이 곳이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어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기회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수정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6명은 괴로워하거나 억울해하는 기색 없이 덤덤히 길을 걸어간다. 고개를 떨어뜨리며 눈물을 흘리는 듯한 사람도 한 명 보이지만 아래에서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 담담하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 자신의 세계에 갇혀 나의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그래서 나의 만족과 이익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현대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원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면 로댕의 초기 작품부터 후기작품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다. 그의 초기작품에는 석고상과 더불어 그림이 많다. 그림도 아주 수준급이다. 그가 지금과 같은 영광에 오르기 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려 했던 반증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과 같은 조각가가 되기 전에 그도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자신을 표현했다. 피아노와 더불어 여러 가지 함께 하고 있는 나에게 위로가 된다.
중기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조각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특히 같은 작품을 여러 가지 재료로 수십 번 만든 듯한 흔적이 눈길을 끈다. 똑같은 작품이 작은 크기로, 좀 더 큰 크기로, 석고로 또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다. 여러 명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로 떼내어 만들어 보기도 했던 모양이다. 천재적인 재능(심지어 악마의 재능이라고까지 불리는)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 되었던 그의 일생이다. 놀랍다.전시를 다 보고 내려와 1층에 오니 석고상과 청동상을 만드는 과정을 비디오로 보여준다. 생각과 몹시 다르다. 흙으로 빚은 작품을 각도기나 도구를 사용하여 정확하게 잰다. 그리고 아주 수학적으로 돌을 깎아나간다. 마지막에는 조각가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청동상은 더욱 놀랍다. 원하는 모양으로 만든 석고상을 인고의 과정을 거쳐 젤라틴과 흙으로 표면을 입히고 깨고, 다시 엄청난 온도의 가마에 구웠다가 틀만 사용해서 청동을 붓고 땅에 묻어 엄청난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작품이 식기를 기다린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에 엄청난 시간과 정성과 노력 그리고 과학이 필요하겠구나 싶다.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이해과정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로댕 박물관을 나와 앵발리드를 지난다. 군사 박물관인 이곳은 사진만 찍고 살짝 패스하기로 한다. 그 길을 따라 좀 더 걸어가니 드디어 에펠탑이 저만치서 보이기 시작한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이 내 마음처럼 사진을 안 찍어준다. 에펠탑이 너무 작거나 내가 너무 작다. 내가 원하는 구도를 내 마음처럼 안 찍어준다. 여행 15일차, 나에겐 웃으면서 불평하는 기술이 생겼다. 남편에게 그 기술을 사용하여 사진에 훈수를 둔다. 점점 인생샷(인생을 통틀어 기념할만한 사진)이 나오기 시작한다.
가까이서 보니 굉장하다. 생각보다는 작다는 나의 말에 남편이 내 스케일이 크다며 놀린다. 잠깐 에펠탑 화장실을 들른다. 흑인 아주머니가 경비를 보고 있다. 분명히 내 앞의 프랑스인에게는 굉장히 상냥했는데 내 차례가 되니 말도 안하고 가만히 째려본다. 영어로 가방을 보여줘야되냐고 물어봤는데 대답도 안하고 프랑스어로 얘기한다. 내가 뭐 어쩌라는 건지 몰라 한 쪽 가방 어깨 끈만 매고 서있으니 프랑스어로 화를 내며 내 가방을 뺏는다.
누가 봐도 인종차별 중이다. 남편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몹시 불쾌해진다. 어제 오랑주리 미술관보다 더 심하다. 대다수의 프랑스인은 매우 유쾌하고 상냥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아주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내비친다. 다음엔 꼭 프랑스어를 해서 와야겠다. 다음번에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왜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는지, 왜 설명해주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고 화를 내는지, 왜 이런 유명한 관광지에 일하고 있으면서 영어를 한 마디라도 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지 물어보겠다.
남편이 또 내 인생샷을 찍기 시작했다. 점점 사진을 찍는 솜씨에 물이 오른다. 이번엔 내가 남편을 찍는데 에펠탑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하염없이 그 조명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전등만으로 사람이 행복해진다. 내가 프랑스에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손을 잡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우리에게 남은 대중교통 티켓이 별로 없다. 에펠탑에서 숙소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걸어가 보기로 했다. 30-40분 정도 버스가 다니는 큰 길을 걸어 집으로 온다. 집으로 오는 길에 새로운 까르푸 시티가 있어 들렀는데 내가 갑자기 몹시 배가 아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이 점원에게 화장실을 쓸 수 있는지 물어본다. 난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흔쾌히 직원용 화장실을 쓰게 해준다. 이런 프랑스인도 있다. 덕분에 살았다. 친절한 직원 덕분에 여유 있게 파스타소스와 여러 가지 장을 본다. 계산해보니 우리 돈으로 17,000원. 이마저도 너무 과소비 한 건 아닐까 뺄 것이 있을까 살펴보게 된다. 절약과 만족의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방에 돌아와 아침에 먹고 남은 돼지고기를 활용해서 파스타를 산더미처럼 한다. 오늘 유난히 배가 고픈 하루였다. 남편과 신나게 파스타를 먹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 엄청난 함성 소리가 들린다. 마치 우리나라의 촛불집회처럼 다 같이 외치는 소리다. 겁이 난다. 파리 근교에서 흑인 청년의 경찰에 의한 성폭력 사건 때문에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 시위가 점점 전국적으로 번지는 추세고 심지어 지난주엔 위험지역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강도를 맞는 사건도 있었던 터라 조심하라는 경고도 뉴스에서 보았다. 저게 뭘까 걱정이 됐다. 내일 루브르에 늦게까지 있다 오기로 했는데 일찍 와야 되는 것 아닌가.
근심하고 있든 차에 갑자기 저 소리가 혹시 응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지도를 검색해보니 근처에 축구경기장이 있다. 가만히 듣다보니 노랫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후에 알고 보니 그 경기장에서 FC바르셀로나와 프랑스의 생제르맹 축구단이 경기를 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메시가 소속 된 엄청난 팀인데 그 팀을 상대로 프랑스 생제르맹이 4골이나 넣었단다. 어쩐지 함성이 4번 정도 엄청 크게 들렸었다. 한숨 돌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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