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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7 Paris, France

열여섯번째 날 일기 (수정중)

오늘은 점심을 좀 더 야무지게 싸가기로 했다. 파니니에 도전하기로 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Mozart 빵집으로 향했다.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그 줄을 뚫고 참치 바게트 샌드위치와 Tradition이라는 바게트를 샀다. 일용할 양식을 들고 버스를 탔는데 어라? 우리 표를 개표기가 안 먹는다. 기사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니 괜찮단다. 알겠다고 그냥 탔다. 우리 표에는 문제가 없는데 이것저것 설명하려면 번거로우니 기사님이 봐준 것 같다. 자리에 앉아 거울로 기사님 얼굴을 보니 잘생겼다. 왠지 영화배우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잘해주신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첫 목적지는 개선문이다. 요즘 우리는 여행 막바지를 맞이해서 체력이, 게임으로 치면 HP의 총량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금방 에너지가 떨어진다. (게임으로 치면, 피가 금방 닳는다 ㅎㅎ) 에너지가 더 떨어지기 전에 개선문부터 올라가보기로 한다. 

동글동글한 달팽이 같은 계단을 열심히 올라간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다. 그래도 올라간다. 힘들다. 애국가를 마음속으로 한 계단씩 부르기 시작했다. 3절까지 부르니 드디어 도착했다. 이 구역의 도로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되어있다는 부연설명을 남편을 통해 듣는다. 전망대에 오르니 정말로 그렇다. 이곳을 중심으로 쭉 시내가 펼쳐져 있다. 계획된 도시개발이었나보다. 한참 구경하다 내려온다.

개선문이 보이도록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삐에로 아저씨가 훅 들어온다. 오빠가 손을 뿌리치자 내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사진 찍기를 유도한다. 세 번 정도 포즈를 잡더니 이번엔 남편의 손을 이끌며 포즈를 취한다. 한 장 더 찍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나자 남편에게 자신의 손을 보여주는데 10유로가 있다. 돈을 달라고 할 것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비싸다. 내가 우리 학생이라 돈이 없다고 5유로로 해 달라고 하니 ‘Paris’ 라는 말을 반복한다. 파리에 여행 올 정도의 너희가 10유로도 없겠냐는 뜻인 것 같다. 10유로면 우리의 이틀 치, 어쩌면 삼일 치 점심이다. 우리가 며칠에 한 번씩 꼭 먹고 싶을 때마다 먹는 커피를 넉 잔 정도 마실 수 있다. 큰 돈이다. 진짜 학생이라 돈이 없다고 하니 손가락으로 쉿 하며 비밀로 하자고 5유로만 받아간다. 내가 그 사람이면 반이나 깎은 우리를 훽 돌아서 갈 것 같은데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 하며 유쾌하게 헤어진다. 그는 프로였다.

남편이 기분이 안 좋아졌다. 자기가 그 사람을 더 적극적으로 뿌리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자기 탓을 한다. 아마도 갑자기 예상치 못한 돈을 써서 기분이 별로인 것 같다. 나도 당황스럽지만 애써 긍정적인 척하며 좋은 점을 억지로 찾아내려고 했다. 남편한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그리 손해가 아님을 어필한다. ‘오늘 우리는 커피를 타서 왔잖아. 그 돈 아꼈지. 처음에 사려던 빵보다 더 좋으면서 저렴한 빵을 샀잖아. 그 돈도 아꼈지. 그럼 우리가 원래 써야했을 돈 보다 2유로 정도 더 쓴 거야.’ 이런 소리를 하며 남편 주위를 맴돌았다. 그랬더니 최면이라고 걸린 듯 기분이 점점 나아진다. 오호? 나의 노력에 남편도 조금씩 웃는다.

조금씩 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며 샹젤리제를 걷기 시작했다. 콧노래를 부른다. 오~ 샹젤리제! 그런데 생각보다 그냥 거리다. 테헤란로, 윤중로, 가로수길 처럼 그냥 번화한 거리다. 중간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 함께하는 여행의 장점이다.

다시 룰루랄라 걸어 엊그제 방문했던 튈르리 정원의 관람차에 도착했다. 월요일에는 정원 방향에서 콩코르드 광장을 보았는데 오늘은 광장에서 정원을 본다. 새롭게 보인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광장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처형당했다고 한다. 그 때는 몰랐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잔디밭에 삼삼오오 앉아 다들 일광욕을 하고 있다. 우리도 거기에 합류하여 자리를 잡았다. 잔디밭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나는 글을 쓰고 남편은 루브르의 지도를 본다. 행복하다.

한 편을 마무리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튈르리 끝에서 다시 프란치스코 아저씨를 본다. 거의 비둘기를 마술사가 앵무새 다루듯이 한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다른 관광객에게 비둘기를 얹어주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도와준 뒤 손을 내밀어 돈을 받는다. 갑자기 확 다르게 보인다. 저런 걸로도 돈을 벌 수 있구나. 그 사람의 능력이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쩝.

정원을 뒤로 하고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오늘은 월요일과 달리 익숙하게 길을 찾아 지하로 들어간다. 필요한 준비를 마치고 Sully 쉴리관에 들어갔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청소 중이다. 이 곳에서는 한 쪽 화장실이 청소를 하면 여자와 남자가 하나의 화장실을 같이 쓰게 한다. 문화충격이다. 그게 싫어서 다른 화장실을 찾아 돌아다녔다. 두 층을 더 올라가 겨우 화장실을 찾았는데 똑같은 상황이다. 아까 거기서 기다리는 게 나을 뻔 했다. 어쩔 수 없이 줄을 서 있었다. 다행히 내가 쓰기 직전 여자 화장실의 청소가 끝났다. 거참.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인간적으로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거참. 인간의 심리는 정말 상대적이다.

남편과 나는 계속해서 컨디션이 난조다. 심지어 앞이 흐린 것만 같다. 밥을 먼저 먹자 싶어 아침에 사 온 샌드위치와 바게트를 꺼냈다. 참치바게트가 무척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남편이 나에게 먹을 만큼 먹고 자기를 달라고 한다. 한 입 먹었는데 너무 맛있다. 어디까지 먹어야 나도 만족하고 남편도 충분하게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한 입씩 먹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정도에서 만족하는가. 계속해서 생각하고 나의 배가 어느 정도 찼는지를 느끼면서 먹으려고 노력하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고민하면서 먹었는지 모를 것이다. 다행히 둘 다 만족하는 선에서 샌드위치를 나눠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다시 Richulieu 리슐리외관부터 계획을 세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돌아본다. 엄청난 옛날인데 지금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의 세밀한 기록이 어마어마하다. 거기서 초기 이집트 문명으로 옮겨가니 오히려 갑자기 쇠퇴되는 느낌마저 든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정말 대단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집트문명도 발전해 갈수록 입이 떡 벌어지면서 말이 안 나온다.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그들도 고민했다. 부활을 믿고 그에게 필요할만한 것들을 무덤에 같이 넣어주고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었다. 루브르에도 미라가 한 구 전시되어 있다. 저 멀리서 그 유리관을 보는데 소름이 끼쳤다. 지금과 똑같다. 여자로 추정되는 미라는 손가락 하나하나에까지 세심하고 단단하게 붕대가 매어져있다. 아주 정성껏 장례가 치러졌던 모양이다. 그녀를 덮는 천과 관, 장식품까지 하나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녀는 자신이 2017년이 되도록 이곳에 머무르게 될 줄 알았을까. 나는 화장되어 태워지는 것도 무섭고 매장되는 것도 무섭고, 이렇게 미라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도 무섭다. 짧은 순간 나의 나약한 내면을 보고 휘청인다. 남편이 뒤에서 나를 붙잡아준다.

나는 특히 삶과 죽음의 문제에 민감하고 예민한 편이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나를 많이 붙잡고 보듬어줬고 결혼 하니 남편이 나를 많이 잡아준다. 누구나 한 번씩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가끔씩 그 사실을 잊고 산다. 그러다가 갑자기 알 수 없는 無의 세계를 느낄 때가 있다. 나의 형체도 정신도 없고 세상의 시간은 저만치 흘러가고 있는 느낌.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한 空의 느낌에 덜컥 겁이 나고 공포에 질려 눈물이 난다. 언젠가 나는 죽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걸 의식해왔다. 20대 중반이 되고서는 더욱 더 나의 삶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졌다. 시간이 아깝다. 무엇인가를 잔뜩 집어넣고 아주 내용이 있고 알찬 삶인 것처럼, 하루를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으로 쓴 것처럼 그렇게 살려고 했다. 그런데 작년에 아프고 나서 정신이 들었다. 그렇게 사는 삶은 오히려 나의 시간을 더 빠르게 흐르도록 만든다. 이상하다. 24시간 안에 나는 정말 많고 복잡한 일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단순한 삶을 사는 사람보다 더 빠른 시간을 산다. 내가 뭘 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시간들로 나의 삶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라고 후회하게 될 것만 같았다.

이번 여행은 그런 후회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하나의 일환이다. 떼제에서의 시간이 큰 힘이 되었다. 로제 수사님은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교회에서 이름도 모르고 일면식도 없는 루마니아 여성에 의해 목이 그어져 살해당하셨다. 장례식에서 로제 수사님의 후계자인 알로이스 수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그를 용서하소서.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다시 알로이스 수사님은 로제 수사님이 앉던 그 자리에 앉아 2대 원장 수사로서 자신의 일들을 해 나가신다. 어떤 기분일까. 가장 안전한 자리가 아니라 가장 상처받기 쉬운 자리에 앉아 단순하고 소박한, 그러나 아름다운 삶과 기도를 이어나간다. 자기 자신을 지키려 애쓰지 않는다. 누구보다 충만할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 해 본다. 우리가 만난 신한열 수사님의 삶도 그렇게 아름다웠다.

또 하나의 힘은 기록이다. 이번 여행만큼 매일을 기록한 시간들도 없는 것 같다. 아주 어릴 때 나는 정말 일기를 잘 쓰는 아이였다. 얼마나 잘 썼는지 전국의 일기 잘 쓰는 어린이들을 모은 사랑의 일기 캠프에 참여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서 아쉽게도 그 습관을 잃었고 잠시 재수할 때 글을 쓰던 것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기록하지 못했다. 그게 눈물 나게 아쉽다. 남편과도 오랜시간 만나면서 매년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나 기록물이 있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게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나의 불찰로 없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렇다.

미라를 뒤로 하고 Vénus de millo 밀로의 비너스로 향한다. 정말 아름답다. 나신의 상체에서 여성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근육이 느껴진다. 남편이 뒷모습을 보라며 뒤쪽으로 나를 떠 민다. 등 라인과 엉덩이까지 참 아름답다. 이 때의 아름다움이 지금까지도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니. 지금 우리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건강미도 아니고 여리여리한 여성미도 아닌 어떤 밸런스가 있다. 모방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곳에 와서 본 조각 중 가장 아름답고 인간과 닮았다.

계획한 작품들을 다 관람한 뒤 발걸음을 재촉한다. 몇몇 작품 앞에 역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바닥에 털썩 앉거나 서서 교수 또는 강사처럼 보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글을 적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저번 소르본 대학 앞에서 느꼈던 바와 같이 남편과 내 눈에는 그게 정말 좋아 보인다. 약 10,000원 정도만 내면 (학생은 아마 더 쌀 것이다) 세계적인 작품들을 직접 보면서 공부할 수 있다. 물론 우리의 문화가 서양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참 좋아 보인다. 이렇게 공부한 학생들과 교과서에 나온 그림을 눈으로 찍어 머릿속에 입력한 우리 학생들이 경쟁할 수 있을까? 학교교육이 지금의 텍스트와 2D 중심의 교육이 아닌 살아있는 교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능을 위한 텍스트 중심의 교육이 결국 대한민국 교육계 전반의 컨셉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당장 다음 학기에 복학하는 나는 마지막 석사과정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어쩌면 나 역시 악보 중심의 음악을 하고 또 가르치고 있지는 않을까? 고민이 된다.

루브르에서의 일정을 마쳤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졌다. 유리 피라미드에 조명이 비추며 아름다운 야경을 자아낸다. 그 앞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 남편이 찍어주는 사진이 족족 마음에 든다. 웃어보려고 애를 썼는데 몸이 피곤하니 쉽지가 않다. 그래도 또 그런 대로의 차분함이 있다. 마음에 든다. 

아침에 버스표가 읽히지 않았던 터라 혹시나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번 더 사용해본다. 오! 사용이 가능하다. 안 그래도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는데 잘 됐다. 신나게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