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파리에서의 아침이다. 새로운 곳에서의 아침이 이제 낯설지 않다. 다른 관광객들은 새벽부터 부리나케 준비해서 해가 뜨자마자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은데 우리는 미적미적 천천히 준비했다. 아침도 느긋하게 차려서 먹고 준비도 세월아 네월아 한다.
서울에서는 늘 시간에 쫓기며 생활했다. 아침밥과 잠을 바꾸고 화장은 늘 차에서 하곤 했다. 그렇지만 여행 와서는 잠도 7-8시간씩 푹 자고 아침도 꼭 먹고 샤워를 한 뒤 화장까지 마치고서야 비로소 하루를 시작하고 출발한다. 이런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해도 아침 10시면 모든 준비가 끝이 난다. 서울에서는 일정이 1시에 시작해도 늘 시간에 쫓겨 아무것도 못한 채 빈속으로 12시에 가까스로 나가곤 했다. 그러면 늘 나의 배를 채워주는 건 편의점이나 커피 한 잔이다. 남편이 늘 걱정했던 나의 생활패턴이었다.
반면 남편은 전날 늦게 잠들어도 가급적이면 새벽에 일어나서 꼭 테니스를 치러 나갔다. 그의 비염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침에 운동을 하면 하루를 상쾌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테니스를 치고 나면 그곳에서 어른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오거나 집에 돌아와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뒤 준비를 하고 학교를 가거나 일을 하러 간다. 학교 수업을 받다가도 중간에 점심 먹을 시간이 되면 본가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물론 학교와 본가가 10분 거리인 덕분이기도 하다.) 커피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사 먹지 않고 저녁도 되도록이면 집에서 먹었다.
그런 생활습관을 가진 그와 함께였기에 여행을 나와서 삼시세끼 집밥이나 계획한 밥을 먹고 물을 많이 마시며 돌아다니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둘 다 이렇게 많이 걷는 것은 오랜만이라 힘이 부쳤지만 그는 나를 챙겨 냄비에 밥을 하고 대부분의 우리의 식사를 책임졌다. 덕분에 나도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정말 고맙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하자 11시가 되었다. 남편은 벌써 몇 번째 루브르 방문인지 모른다. 우리는 오늘 뮤지엄패스를 살 예정이다. 나는 당연히 남편이 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루브르의 뮤지엄 패스 티켓팅 시스템이 재작년 5월과는 조금 달라진 모양이다. 그가 길을 헤맨다. 헤매기 시작한지 20분이 넘어가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내가 말이 없어지고 떼제노래만 반복해서 부르며 화를 참는 모습을 보이는데도 그는 나에게 성질내지 않고 묵묵히 길을 찾는다. 결국 네이버 블로그 검색까지 동원하는데도 뮤지엄패스를 사기 위한 줄이 보이지 않는다. 공항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왜 안 샀느냐 부터 지나간 일들에 대한 후회와 원망이 삐쭉삐쭉 나오기 시작한다. 여전히 그는 화를 내지 않는다.
결국은 건물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필 또 이럴 때 흑인 잡상인이 말을 건다. 한국어로 ‘1유로, 1유로, 반짝반짝’ 하는데도 쳐다도 안 봤다. 바로 그 때 그가 어딜 찾느냐고 영어로 묻는다. 나는 들은 척도 안하는데 남편이 뮤지엄 패스를 사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상인이 유리 피라미드 뒤쪽으로 가서 줄을 서라고 한다. 우리가 아까 거기에 서 있는 경비원한테 물어봤을 때 모른다고 했었는데, 이상하다. 그래도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우리가 처음에 고려했던 입구에 가서 줄을 선다. 여기가 맞다. 잡상인을 돈에 환장한 사람으로 보고 무시했던 내가 창피하다. 괜히 부끄러워서 남편에게 처음부터 여기 섰으면 벌써 들어갔겠다고 툴툴댔다. 남편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그러네, 미안해.’ 하고 만다. 나도 슬쩍 옆으로 다가가 팔짱을 꼈다.
루브르의 랜드마크인 유리피라미드 지하로 들어와 뮤지엄 패스를 샀다. 이걸 사려고 여길 그렇게 헤맸네. 도착 1시간 만에 드디어 티켓을 샀다. 4일에 약 100유로. 우리가 떼제에서 보낸 1주일에 맞먹는다. 그래도 이걸 사야 우리가 파리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 유적지들을 둘러볼 수 있다. 기꺼이 지불했다.
옷과 짐을 맡겨야한다. 외투와 가방이 아주 거추장스러웠는데 잘 됐다. Cloak room에 들어간 남편이 깜짝 놀란다. 원래는 사람이 일일이 물건을 받아 맡아주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자동 보관함으로 바뀌었단다. 400번대에 들어가 우리의 짐을 넣고 비밀번호를 설정했다. 짐을 넣자마자 그냥 가려는 나와 달리 남편은 보관함 번호를 사진으로 찍는다. 이게 바로 남편과 나의 다른 점이다. 덕분에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
오늘은 모나리자 Mona Lisa 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The liberty leading the republic 이 전시된 드농관Denon 을 집중적으로 보기로 했다. 우리는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지 않았다. 하나를 빌리자니 한 사람씩 번갈아 들어야 하고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둘을 빌리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결국 상상의 나래와 인터넷을 활용하기로 한다.
2층에 올라가니 세계적인 작품이 -할머님 표현을 빌려 얘기하자면- ‘나래비’로 줄을 서 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온통 교과서에 나올 작품들이다. 하나하나 보니 벌써부터 정신이 없다. 지도를 챙겼어야 했는데 깜빡 잊었다. 다시 information center 안내처로 돌아가 지도를 가져오자니 돌아갈 길이 구만리다. 결국 돌아다니면서 이정표에 안내된 유명한 작품들을 지표로 삼기로 했다.
가장 많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모나리자다. 일단 거기부터 한번 가보기로 한다. 저 멀리서도 저 곳에 모나리자가 있다는 걸 알겠다. 엄청난 사람들이 작품 주위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 다행히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 따로 설치된 벽에 오목한 틈 사이에 모나리자가 전시되어 있고 그 위를 볼록한 유리벽이 보호한다. 한 마디로 철통방어다. 심지어 그마저도 최신의 기술로 정교하게 복원된 복제품이란다. 원본은 보존을 위해 따로 특별 보관되어 있다고.
나에겐 생각보다 감동이 없다. 내가 뭘 잘 몰라서 그러는지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한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모나리자를 보기 직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세례 요한 그림을 보고 와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는 세례 요한을 그리스의 주신 디오니소스(바커스) 스타일로 그렸다. 난 그것도 별론데 그 그림에서 취하고 있는 (그가 설정한) 세례 요한의 제스처도 별로다. 무슨 생각으로 그 그림을 그렸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의 생과 인생철학에 대해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모나리자도 나에겐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냥 한 번 본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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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기대하고 고대하는 작품은 따로 있었다. 들라크루아 E. Delacroix 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작품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설레어했다. 우리가 가진 가이드북에서 알려준 위치를 따라 그림을 찾아간다. 그리고 저 멀리서 그 작품이 보였을 때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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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유를 상징하는 여신이 총기를 든 남자들 앞에서 역시 자유를 상징할 듯한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총이나 칼을 들고 있지 않다. 깃발을 들고 많은 민중(그림 속에서 남성으로 표현된 이들)들을 자유로 이끈다. 자유가 총과 칼로 쟁취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 자유를 원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도구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진심으로 모을 수 있는 힘은 결국 어떠한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을 사람들에게 계몽하는 현명한 리더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이 작품이 좋다. 그 앞에 서서 너무 좋아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또 본다. 모나리자와 달리 아주 자세히 볼 수 있다. 신이 난다.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신나서 다른 데 갔다가 또 와서 다시 한참을 들여다보고 갔다.
어느덧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오늘 우리는 첫 주의 기억을 되살려 본마망 라즈베리잼과 갈릭크림치즈, 그리고 바게트를 사 왔다. 드농관 입구 밖에 잠시 쉴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우리가 이번 숙소에서 묵으며 새로 다니기 시작한 빵집의 바게트를 논하며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저 쪽에 어떤 한국인 가족이 보인다. 유모차를 탄 아가와 걷는 어린이, 그리고 엄마, 아빠까지 네 식구다. 유모차를 미는 엄마와 아이들을 아빠가 저만치 먼저 앞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남편과 그 모습을 보며 ‘이 가족들의 여행사진 대부분에는 아빠가 없겠네’ 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더 지켜보는데 루브르 지하 1층을 배경으로 엄마와 아이들, 세 명을 세워두고 아빠가 사진을 찍는다. 먹던 빵을 내려놓고 쪼르르 달려가 혹시 한국인이시냐고 사진 찍어드리겠다고 말을 건다. 아버님이 적잖이 놀라신 눈치시지만 싫지 않으신지 고맙다며 카메라를 내게 주신다. 열심히 두 장을 찍었다. 이 아버지가 이 어린 아이들과 아내를 데리고 직장에 휴가를 내어 루브르박물관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까. 새삼 정말 대단해 보인다. 그 가족에게 좋은 추억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드농관에 들어갔다.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라는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아까 그 작품을 지나갔었다. 그 때는 그렇게 위대한 작품인지 몰랐지만 점심을 먹다 다시 본 가이드북에 그 조각상의 가치와 위상이 잘 적혀있었다. 다시 들어가서 보니 새삼 다르게 보인다. 미술사를 취미삼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음악의 역사는 언제나 미술과 문학이 함께 했다. 바로크나 고전,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 그리고 그 이후까지 예술의 역사는 유기적으로 엮여있었다. 미술은 대부분의 예술사조에서 늘 선두에 있었고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분야가 음악이다. 좋은 기회가 있었으면 싶다. 오늘의 루브르는 여기까지. 내일은 휴관이니 목요일에 다시 와 보도록 하자.
박물관을 나와 튈르리 정원으로 향한다. 여름에는 꽃과 푸르른 잎이 만발하는 곳이지만 겨울이라 아쉽게도 그런 모습은 보기 어렵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슬슬 걸어가는데 저 쪽에 비둘기들을 부리는(?) 수염 난 아저씨 한 분이 계시다. 거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수준이다. 이 정원의 비둘기들은 다 아저씨의 친구인 것만 같다. 신기하다.
신기한 아저씨를 지나 정원의 끝에 다다랐다. 이 곳에는 오랑주리미술관 Musée d’Orangerie이 있다. 모네의 수련연작과 르누아르의 그림들이 있어 가고 싶은 곳으로 일찌감치 점 찍어둔 곳이다. 잔뜩 기대하고 줄을 서 입장했다. 이 곳도 가방과 외투를 맡겨야 한다. 두 명의 여성이 정신없이 일하는 Cloak room으로 향했다. 그런데 내가 불어를 몰라 줄을 잘못 서서 찾는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일하는 분이 안 된다며 이 쪽으로 줄을 다시 서라고 엄청 까다롭게 군다. 다시 한참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내가 했던 실수를 다른 프랑스인이 반복했다. 그에게는 무척 관대하게 굴며 옷을 맡아준다. 갑자기 기분이 확 상한다. 그녀는 영어를 잘 못 하고 나는 불어를 못 한다. 이건 뭐 따지고 싶어도 서로 말이 안 통해서 못 따지는 상황이다. 남편이 나를 진정시킨다. 오고 싶었던 곳인데 이런 일로 열 내지 말자고 한다. 다음에는 불어를 꼭 해서 얘기라도 한번 해 보리라고 다짐한다.
그래도 막상 모네의 작품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 곳은 모네와 르누아르, 피카소의 작품 몇 가지가 특히 유명하다. 르누아르의 따뜻한 색감과 모네의 수련 연작이 내 마음에 들어온다. 특히 모네의 작품은 가까이에서 볼 때, 멀리서 볼 때 많이 달랐다. 가까이서 보면 선과 붓 터치가 거칠고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가 없는데 멀리 떨어져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고 심지어 따뜻해 보이기까지 한다. 정말 희한하다. 거친 디테일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전체라니. 모순 같지만 가능했다. 그가 증명했다.
이쯤 돌아보니 몹시 지친다. 커피를 한 잔 마실까하고 돌아다니는데 유명 관광지 프리미엄이 붙는지 다 너무 비싸다. 밖으로 나와 적당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튈르리 정원 끝에 위치한 관람차도 지나가고 콩코르드 광장도 지난다. 어디를 가면 가격도 맛도 착한 커피를 맛 볼 수 있을까. 헤매며 돌아다니는데 남편이 저번에 이 근처에서 마카롱 가게를 봤다며 거기에 가 보자고 한다. 별 생각 없이 장인의 수제 마카롱이겠거니 하고 따라가는데 라 뒤레 La durée였다. 이럴 수가! 내가 프랑스 오면 너무 먹고 싶은 디저트 브랜드였지만 한 푼 두 푼 아껴쓰는 우리의 재정형편에 무리가 갈 것 같아 남편에게 얘기도 꺼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포기했던 바로 그 라 뒤레 마카롱이었다. 그 앞에서 방방 뛰며 좋아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환하게 웃는다. 정작 본인은 여기가 유명한 마카롱집인지도 몰랐단다. 그래서 저번에 왔을 때도 여기서 아이스크림만 먹고 갔다고 했다. 진열장 앞에서 입을 헤~ 벌리고 좋아하는 내 옆에서 남편이 6개나 고르라고 했다. 정말 6개나 골라도 되냐고 두 번 세 번 물어보는데 당연히 된다며 더 먹고 싶으면 더 고르라고 한다. 6개면 충분히 만족하고도 남는다. 남편이 고른 검정마카롱(무슨 맛인지 잊어버렸다), 피스타치오와 함께 내가 로즈, 카페, 초콜릿을 골랐다. 직원에게 하나 추천해달라고 하니 우리의 고른 맛을 슥 보고 캐러멜 솔티를 추천해준다. 6개를 봉투에 담아 손에 들고 가니 벌써 기운이 난다.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라 뒤레 맞은편의 마들렌성당으로 향했다.
마들렌성당은 우리가 프랑스에 와서 보았던 여러 성당들과는 다르게 생겼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마치 그리스의 신전처럼 생겼다. 누군가가 토막지식으로 전해주기로는 나폴레옹 (혹은 3세)이 스스로 황제가 된 뒤 자신의 권위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짓도록 지시한 성당이란다. 그래서 내부의 천장 벽화에 가장 가운데에 앉아있는 황제 자신이 보인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들어오는 입구의 포스터를 보니 이곳에서 종종 연주회가 있는 모양이다. 수요일 저녁에 비발디의 사계와 파헬벨의 캐논, 모차르트의 곡들을 연주한단다. 1인당 30유로. 성당에서 연주되는 비발디가 정말 듣고 싶지만 일정과 비용상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성당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카르푸 시티(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같은 체인점)가 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어볼까 하고 이것저것 양과 질, 가격을 따지는데 손질되지 않은 돼지고기가 눈에 들어온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이걸 사야겠다.
마카롱도 있고 고기도 있고, 오늘을 위해 부르고뉴에서 사 온 와인을 열 때가 됐다. 자, 그럼 먼저 고기를 익혀볼까? 하고 손질을 시작하려는데 오잉? 뼈가 있다. 이 고기 앞다리나 뒷다리 같은 거였다. 한마디로 족발용 고기였다. 숙소에 있는 무딘 칼로는 뼈에서 살을 분리해 낼 재간이 없다. 할 수 없이 냄비에 물과 함께 삶기 시작한다. 1시간이면 되려나. 오잉? 똑같다. 2시간이면 되려나. 아주 조금 변했다. 이 글의 스케치를 적던 시각을 기준으로 3시간을 삶았지만 먹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빵과 샐러드, 마카롱(환상적인 맛!) 그리고 마콩의 와인으로 만족한다. 내일이면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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