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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7 Paris, France

두번째 날 일기 (수정중)

우리가 묵고있는 숙소는 아침을 제공한다. Elodie와 Geal의 집은 그들의 호텔리어라는 직업답게 룸서비스나 조식, 화장실 청결 유지 등이 남다르다. 그만큼 또 철저히 규칙이 있고 extra를 요구하는 경우 추가금액이 붙는 면이 있지만 주어진 것들 안에서 만족하고 잘 쓰면 추가로 지불할 일은 없다. 아침식사는 빵과 아기이유식 같은 느낌의 간 사과와 티와 블랙커피믹스가 나왔다. 한 끼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어제 남은 샌드위치와 먹으니 또 세상든든하다. 새벽 6시쯤 밥을 먹고 시차적응을 아직 완전히 하지 못해 밤새 2시간 간격으로 깬 탓에 다시 잠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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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시간 정도 더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남편도 일기를 쓰고있다. 이번 여행에서 글을 많이 쓰고 기록을 많이 할거라고 하면서 여행기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니 글을 보며 재미있어하고 또 내가 잘못 알고 있던 정보를 고쳐주기도 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남편도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상황에 놓여져있었는데 두 사람이 글을 쓰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나중에 우리의 글쓰기가 더 무르익으면 같은 상황을 놓고 음악가와 철학자, 신학자인 부부가 다른 관점에서 글을 쓰는 그런 여행기를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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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의 식사를 해결하기위해 집 근처 까르푸 #carrefour 를 갔다. 다행히 근처에 큰 쇼핑센터가 있다. 아침을 먹었지만 다시 배가 고파진 우리는 제일 먼저 빵집 #branserie 에서 바게뜨를 사기로 했다. 조금만 뜯어먹고 나머지는 점심에 먹자는 취지이다. 1유로도 안하는 가격으로 바게뜨를 사고 프랑스에 왔으니 크루아상을 먹기로 한다. 두 빵을 합쳐서 2유로 안쪽으로 해결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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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물마다 보안이 심하다. 이 건물 역시 입구에서 가방과 주머니를 확인하고 수색대를 통과해야했다. 불편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까르푸에 들어갈 때도 가방의 지퍼에 공업용 끈을 묶는다. 느슨한 듯 철저한 곳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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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사먹지 않고 마트에서 직접 사서 먹거나 해먹자 -는 것은 남편의 아이디어다. 주부로써 (에헴! 🤓) 이 곳의 물가는 어떤가 한번 찬찬히 둘러본다.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다. 물이나 쥬스, 과일 등이 0.1-4유로 안에서 거의 해결이 된다. 프랑스가 물가가 비싸다고 들었는데? 의아해하다 완제품의 가격을 보니 갑자기 10유로, 20유로로 마구 뛴다. 생필품, 원재료에 한해서만 착한 가격(!)을 유지하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이와 반대의 경우가 많다. 유기농, 착한 음식들의 가격이 착하지 않고 다 만들어지거나 조리된 음식은 무척 싸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전자가 몸에 좋다는 걸 알지만 후자를 택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의 문화는 이런 물가를 통해서도 만들어지는 것 같다. 지금 묵는 숙소가 요리가 허용되면 당장 재료를 살텐데 아쉽게도 이 곳은 음식 보관이나 요리가 금지되었다. 그래서 당첨된 오늘의 점심은 갈릭크림치즈와 본마망 라즈베리잼이다. 깜빡하고 발라먹을 도구를 두고온 탓에 바게뜨를 찍어먹을 수 있는 넉넉한 크기로 산다. 바나나와 1.5L 에비앙도 두 통이나 산다. 한국에서 사면 만원이 훌쩍 넘었을텐데 전부합쳐 5유로 안에서 해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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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해진 가방을 매고 Liberte역으로 다시 향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바게뜨를 전부 뜯어먹었다. 새로 사야겠다 싶어 역 바로 앞에 있는 빵집에 들어갔다. Da Baguette 라고 적힌 메뉴판에 용기를 얻어 불어로 주문해본다. “Excuse moi, Da Baguette S’il vous plait.” 우왕 알아듣고 잘라줄까요? 물어보신다. 너무 기뻐서 한국어로 네네네네 했다. 내일은 멋있고 여유있게 Oui (네) 해야겠다. 갑작스러운 나의 분발에 남편이 옆에서 놀란 눈치다. 어깨가 으쓱한다. 다음번엔 남편에게도 기회를 줘야겠다. 으헤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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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조금 익숙해진 메트로를 타고 Bastille (바스티유) 역에 내렸다. 오늘 우리는 많이 걷고 많이 이야기 할 예정이다. 주머니와 가방에 두둑한 식량이 있어 든든하다. 역에서 대중교통 티켓 10장 까르네를 사서 챙겨둔다. 대략 루트를 정해두긴 했지만 힘들면 언제든지 메트로나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기로 했다. 해결해야 할 미션이 없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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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de Bastille 바스티유 광장은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난 곳이다. 우리의 촛불집회가 겹친다. 광장의 힘은 그런 것에 있다. 민주주의의 힘. 바로 옆에는 Opera Bastille 오페라 바스티유가 있지만 건물이 현대적이라 오히려 마음이 가지않는다. 바스티유 광장도 마침 공사 중이다. 발길을 다른 곳으로 재촉하기로 한다. 좀 더 걸어서 보쥬 광장에 가서 점심을 해결할 참이다. 광장으로 가는 길에서 남편이 프랑스 건축조각물이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어떤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어떤 발이 앞에 나와있는지, 말의 자세는 어떠한지 등에 따라 그 사람의 업적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망했으며 후대가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 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분야다. 한국에서는 그런 것이 허세와 뜬구름처럼 느껴졌는데 여기에 오니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고 즐거운 일이다. 이곳에서 연주되는 클래식은 그야말로 제자리를 찾은 것 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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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정도 걸었을까? 보쥬광장이 보인다. 아담하고 잘 정돈된 정원이다. 어딜가나 벤치들이 많아서 앉아서 책을 읽거나 무엇인가를 먹거나, 또 가만히 있기 좋다. 실제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정말 많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 옆에 자리를 잡고 오늘의 식탁을 차렸다. 바게뜨의 크림치즈를 찍고 본 마망 라즈베리잼을 듬뿍 찍어먹으니 엄청 맛있다. 딸기쨈이었으면 오히려 질렸을텐데 라즈베리잼이라 새콤달콤해서 더 좋다. 한국에서 엄청 좋아했는데 비싸서 자주 못 먹었었다. 여기가 내 고향인가 할 정도로 잼이 맛있고 퀄리티가 높고 싸다. 바게뜨로 채워진 위를 바나나의 섬유질로 감싸니 든든하다.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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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는 빅토르위고 생가 (조사 상으로는 무료라고 알려진)에 갔다. 오늘의 목표는 무료 위주로 돌아보기. 그런데 막상 입구에서 입장료를 요구한다. 다다음주에 뮤지엄패스를 끊을 예정이기 때문에 지금 입장료를 내고 볼 필요가 없다. 내일올게요 하고 돌아나온다. 멀지않은 노트르담 성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길을 걸으며 인상적인 것은 첫째 비닐봉지나 종이봉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십중팔구 관광객이고 그런 관광객 중 십중팔구는 한국인이다. 비성수기라 그런지 한국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4번 중 한번은 비닐봉지를 들고있다. 우리에겐 그런게 자연스럽다. 뭔가 아쉬워진다. 둘째는 연예인이 나오는 광고물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있더라도 보정이 자연스럽다. 얼굴에 있는 주근깨를 모조리 가리는 것이 아니라 남겨두고 피부도 여성스러운 것보다는 건강해보인다. 몸값이 비싼 연예인을 쓰지 않으니 필수품들의 가격 형성대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선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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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건물들이 대부분 높지않고 옛날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서로서로 모두 다 잘 어울린다. 그래서 갑자기 어떤 박물관이나 유적지가 나와도 놀랍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우리가 만난 Saint-Paul-Saint-Louis 도 그렇다. 예상치못하게 만났지만 아담하면서 아름다웠다. 대구의 계산성당에 갔을 때도 좋았던 건 유적지이지만 성당이라서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러 자연스럽게 들어온다는 것이었는데 이 곳도 그랬다. 우리가 찬찬히 둘러보는 동안 현지인들이 편안히 들어와서 기도를 올렸다. 글을 쓰며 조금 위키백과를 살펴보니 천장의 돔이 아주 인상적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다다음주에 생트미셸을 보러갈 때 다시 한번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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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기분따라 방향만 정하고 걷다보니 Seine 쎄느강이 나온다. 아 이게 쎄느강이구나. 가슴이 벅차오른다. 번쩍번쩍한 관광지로 꾸며둔 것이 아니다. 그냥 옛날에도 지금에도 강은 흐르고 있다. 그 풍경의 일부로 들어가서 서 본다. 자연스럽고 감격스럽다. 이 날을 위해 준비한 카메라 단렌즈를 꺼내 뷰파인더에 눈을 대본다. 이 맛에 단렌즈를 쓰는거군! 풍경을 담기엔 나쁘지만 풍경과 나를 어우러준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에 이 여행의 진짜 주인공이 된 것 같다. 괜히 기분이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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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걸음을 돌려 노트르담 성당 뒷편으로 향한다. 한눈에도 집시같은 사람들이 영어로 장애인을 돕기위한 서명을 촉구한다. 2015년 남편이 왔을 때도 그들은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서명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이다. 한번 겪었던 남편의 단호한 노노노노 😒로 단숨에 그 곳을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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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뒷 편을 돌아가니 노트르담 성당이다. 약간의 줄이 있었는데 남편말로는 줄이 정말 짧다고 한다. 여름에는 성당 앞 광장을 꽉 메울 정도였다고. 성당을 장식하는 하나하나의 조각물이 모두 디테일이 살아있다. 예수님이라고 더 세밀하고 이름없는 제자라고 덜 정교한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 모든 인물이 살아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완성해 온 이 성당의 힘, 축적된 시간의 힘이 느껴진다. 인물 하나하나가 들고 있는 물건, 자세나 위치에도 다 어떠한 의미와 정신이 있다. 남편 모교의 예술신학을 하시는 송순재 교수님이 왜 이 분야를 선택하셔서 그토록 사랑하시게 되었는지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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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들어서자 아까의 성당과는 다른 웅장함이 느껴진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들, 성당을 채우는 하나하나의 그림과 조각들, 작품들. 글로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도 한참이나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아니 어디서부터 써내려가야할지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그 웅장함에 입이 벌어지지만 보는 사람을 압박하거나 기가 죽게 하지는 않고 매우 세밀하지만 매우 크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설계된 것은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확장되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은 그걸 눈치채지 못할만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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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우리 친정집이 생각난다. 우리집도 조금씩 공사하여 지금과 같은 2층집이 되었다. 우리집을 공사하시던 아저씨들도 좀 이렇게 자연스럽게 해주셨으면 더 좋았겠다싶다. 아니 그 아저씨들 탓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또 하나 아쉬운 면면이다. 기존에 있던 것을 살리고 어울리는 방향으로 하지 않고 다 때려부수고 깨끗하고 반짝반짝하게 새로이 Brand New!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일까. 무엇인가 심리적으로 반성하거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다 없던 일로 하고 하루아침에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하는 마 음이 강한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여기선 아니다. 여기선 지금까지의 나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그 모든 것이 내 인생이 된다. 그동안 읽었던 프랑스와 독일 사람들의 책의 내용을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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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하나 둘러보다가 저 멀리 한국어로 [보물] 이라고 쓰여있는 곳을 보고 다가섰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보관하고있는 성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5유로다. 오늘 하루의 우리 둘의 식사가 5유로였는데 이만큼을 내고 시간을 들여 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 내가 여기를 언제 다시 올까라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다 보려고 하고싶지 않아서 망설이고있는데 남편이 가서 보고 오라며 나를 떠민다. 그는 작년에 와서 봤다고 했다. 못 이기는 척 혼자 천천히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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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없이 전부 프랑스어로 적혀있어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성인들의 뼈와 이, 머리카락 등과 성물들이 잘 보존되어있다. 입구에서부터 본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성인은 막연히 세례요한이라고 생각했는데 Saint Denys 성 데니스, 생 드니 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나와서 남편에게 알려주니 매우 좋아하며 당장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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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는 한 장소에서 여러 사진을 찍고 충분히 본 뒤 그 자리에 머물러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들의 단상을 조금씩 적어서 올리고있다. 그때그때 글을 남겨야 더 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번에 몰아서 할 수 있는 양이 아니기도 하고, 사진 하나하나에 글을 달아주며 의미를 부여하고 비로소 그 사진에 “이름을 붙여주어 꽃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남편이 이해해주지 않으면 어려울 부분이었는데 다행히 좋은 생각이라며 응원해주고 또 오빠만의 무언가를 하면서 기다려주었다. 덕분에 편하게 사진들과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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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성당에서도 미사를 집전하는 곳과 가까운 자리에 앉아 서로의 생각을 정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눈다. 나는 글과 사진을 정리하고 남편은 생 드니를 찾아본다. 그의 생몰연도와 특징들을 찾아보고 나에게 알려주는 그가 또 다시 든든하다. 예수님의 제자의 제자세대인 그는 14명의 헬퍼 helper 중 한 명이고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자신의 목을 직접 들고 있는 것이 그의 attribute다. 몰랐으면 세례 요한으로 알고 갈 뻔했다. 얘기를 나눈 뒤 오직 기도만을 위해 허용된 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각자 기도를 한다. 나의 마음에는 오직 ‘여기 이 곳에.’ 라는 기도만이 맴돈다. 여기가 어디라고 내가 지금 여기와서 기도를 하고 있을까? 남편은 이 곳에 음악이 울릴 때에 감동이 또 다르다며 다다음주 파리에 돌아왔을 때 평일 미사에 참석해보자고 한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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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물을 마셨더니 화장실이 가고싶다. 성당 옆 화장실은 1유로를 받는다. 남편은 다녀오라고 종용하는데 조금만 참아보기로 한다. 혹시 서점에 화장실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발길을 재촉해 Shakespere and company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으로 향했다. 해밍웨이가 사랑한 서점이라고 익히 들어 알았지만 막상 가보니 어떻게 해밍웨이가 왔던 그 서점에 내가 올 수가 있을까 하는 신기한 마음이다. 내부의 인위적임은 하나도 없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고쳐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고쳐내고 최대한 활용하여 지금까지 왔구나 하는 감동이 인다. 동시에 화장실은 없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포기하고 올라간 2층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로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피아노도 놓여있었다. 8시 전에는 쳐도 된다고 써있었지만 왠지 책 읽는 사람들을 방해하게 될 것 같아 한 음만 뿅 쳐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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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화장실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뤽상부르공원으로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길들이 정겹다. 파리의 길은 정말 더럽고 정말 예쁘다고 들었는데 정말 예쁜건 맞지만 정말 더럽지는 않다. 생각보다는 깨끗했다. 마음에 드는 골목으로 들어가다 케밥집을 발견했다. 5유로의 Baguette Oriental 케밥. 가격도 적당하고 왠지 오늘 못 먹은 단백질도 보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안에 화장실도 있을 것 같다. 살짝 들어가 물어보니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신나게 1개를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하고 깨끗한 화장실도 쓰고 손도 씻고. 1석 3조했다. 돈 번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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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밥을 들고 걸어가는데 파리 소르본대학이 보인다. 안은 들어갈 수 없었다. 파리의 대학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천천히 외관을 둘러본다. 대학보다도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삼삼오오 모여앉은 대학생들이다. 와인 한 잔, 커피 한 잔 놓고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누는 모습이 무척 좋아보인다. 학점을 더 잘 받기 위해서, 그러려면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해야된다는 명목으로 도서관에 들어가 스스로 고립되는 우리 대학생들이 생각났다. 나도 혼자서 공부를 하는게 더 편하고 정리가 잘 된다는 이유로 ‘셀프고립’을 시도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다. 나는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과 나누려면 나의 생각과 알고리즘, 매커니즘이 정돈 (정리까지는 아니어도) 되어있어야하는데 늘 흐트러져있었다. 아마 중간중간에 그 과정을 돌아보며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개강부터 중간고사, 심하게는 기말고사까지 늘 흐르기만했고 멈추어 돌아보지를 않다보니 방대한 양을 한번에 정리하려했을때 시간과 체력과 에너지가 부족했던 탓이 아닐까. 대학원을 다니는 우리 부부 눈에는 파리 대학생들의 토론과 모임이 유난히 더 좋아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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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rden de Luxembourg 뤽상부르공원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공원이다. 파리는 서울의 1/3 정도의 크기라는데 공원과 광장들에 이렇게 많은 면적을 할애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니 부럽다. 정원을 중심으로 빙 둘러져있는 의자들 중 두 개에 자리를 잡고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케밥 하나를 나눠먹을 수 있는 우리 사이가 다정하다. 둘 다 불평불만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의 단백질을 나눠먹었다. 바게뜨 조금 더 먹을까싶어 다시 점심먹고 남은 빵을 꺼내는데 비둘기와 갈매기 (?) 떼가 휙 날아온다. 돌아보니 중국인 소년이 새 모이를 바닥에 뿌리고있다. 강제로 식사가 종료되었다. 그만 먹으라는 뜻으로 알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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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니 놀이터와 테니스장, 농구장과 공원이 넓게 펼쳐진다. 그네마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놀고있고 그 앞에는 어김없이 엄마아빠가 있다. 공원 한 쪽에도 아빠와 함께 매직테니스 (어린이용 테니스)를 치거나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이런 풍경이 가능하려면 아빠가 일찍 퇴근할 수 있어야한다. 오후 4시 30분경이었는데도 아빠와 함께 뛰노는 아이들이 쉽게 눈에 띈다는 것이 생소하고 부러웠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될까? 이런 환경이 허용되는 곳에서 살아야할까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이런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할까. 그렇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할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벤치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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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와 농구를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남편이 한 가지 발견을 했다. 농구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패스를 잘 안하고 자기가 공을 한번 잡으면 나름대로 화려한 개인기를 펼치다가 수비를 뚫고 골을 넣는다. 그리고 한 사람씩 자연스럽게 차례를 돌아가며 개인기와 기량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테니스하는 아이들은 상대방에게 주기위한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과 치고싶은 방향으로 공을 친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치면 같이 안 치려고하고 심지어 매너없다고 한단다. 농구도 우리나라는 패스농구라고해서 공을 잡으면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패스하게끔 한다는데 여기는 정반대다. 내가 즐겁고 재밌다. 그렇게 시작한다. 폼이 엉망진창이어도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한다. 그렇게 성장해나가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흡수할 수 있는 하나의 주체가 된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나, 너, 우리로 살고있는거다. 어디에서든지 모여서 자신있게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본은 이런 곳에서부터 나오는걸거다. 자유, 평등, 박애. 내 차례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믿음이 인내를 길러주고 마음의 여유를 주고 타인에 대한 관찰을 가능케한다. Tolerance 툴레랑스, 관용의 정신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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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의외의 ‘사람 사는 모양’들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갈 교통편을 정했다. 아직 한번도 타보지 않은 버스를 타기로 한다. 어제 호스트 Elodie와 Geal이 24번 버스가 그렇게 편하고 좋다고 추천했던터라 한번 찾아서 타기로 했다. 마침 그 버스 정류장이 Pont Neuf 퐁뇌프 옆에 있다. 사랑과 우정을 새긴 자물쇠가 벽마다 주렁주렁 달려있다. 자물쇠들이 어떤 무늬를 이룬 것 같기도 하고 열매가 되어 맺힌 것 같기도 하다. 자물쇠를 파시는 할머니가 한눈에 관광객인 우리를 파악하고 자물쇠를 살 것을 권유한다. 못 본척 하고 지나가는데 오히려 할머니가 지나가는 척 우리 곁으로 온다. 결국 No thank you. 를 하니 오히려 Merci. 하며 지나가셨다. 여윳돈이 있었다면 도와드릴겸 하나쯤 구매했을텐데 한푼이 아쉬운 우리는 슬쩍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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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파리에도 교통체증은 있다. 그래도 조바심이 나지않는다. 지금이 몇 시인지 궁금하지도 않다. 파리는 서머타임에 1시간을 앞당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시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규칙을 정하기 위해 생긴 하나의 툴일 뿐이다. 시간 역시 어떤 행동이나 일의 양을 가늠하기위한 것일 뿐이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 임금을 계산하기 위해 시계가 발전되었고 이것이 동양으로 전해지면서 강박과 관리의 개념이 더 심화된 것 같다. 클래식음악도 비틀어진 문화전파의 하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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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럽과 서양의 생각이 나에게 낯설고 생소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없는 좋은 점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묵고있는 숙소에는 오히려 동양적인 요소들로 장식이 되어있다. 이들에게는 우리의 정서가 좋아보이고 신비로워보이기 때문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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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의 여행기를 적는데 4시간 반이 걸렸다. 올리는데는 1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몰아서는 절대 할 수 없을 양이다. 틈틈이 돌아다니면서 인스타그램에 짧은 단상들을 올리고 한숨자고 일어나 인스타그램을 바탕으로 키워드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며 떠오르는 것들을 덧붙여나갔다. 내 삶에서 한번도 없었던 방식이다. 행복하고 충만하다. 많은 것들을 보고가고 싶지 않다. 적당하고 충분한 만큼만 깊이 느끼고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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