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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daily

190101_ 어른 0살의 첫 날

한국인의 시간으로 30대가 되었다. (맙소사) 그치만 생각보다 그게 싫지만은 않다. 어쩌면 나의 20대가 (누구나 그렇지만)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시간들로 채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싫다. 지금이 제일 좋다. 그것도 하나의 축복이다.

요즘 나의 시계는 8시에 맞춰져있고, 늦어도 9시에는 일어났다. 지난 일요일 노량진 종강 이후 이틀 동안은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마음의 긴장이 풀렸을까. 사람이라는 것이 참 이렇다.

지난 4주간의 시간표


임용고시 2차실기 레슨을 해 온지는 꽤 되었지만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작년부터다. 덕분에 하기 싫었지만 $ 때문에 해야만 했던 많은 일들을 그만 둘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해서 이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안 끝날 것 같은 그 긴긴 시간동안 레슨을 하면서 퀄리티를 유지해야 한다. 작년에는 요령이 없어서 중간에 크게 아팠다. 이번에도 위기는 있었지만, 잘 넘기고 잘 끝낸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퀄리티와 텐션이 초반 레슨부터 마지막 레슨까지 거의 비슷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칭찬할 만 하다.

임용실기레슨은 개인레슨 문의가 꽤 많이 오지만, 지인이라고 해도 현재는 학원 외의 다른 곳에서는 레슨하지 않고 있다. 일단은 관리의 문제가 있고, 동일한 환경에서 레슨을 하면서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함도 있다. 개인레슨은 어쨌든 레슨받는 사람의 needs를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나의 컨디션 관리가 일정하게 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런 시즌에는 더욱. 가끔씩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아직까진 그 원칙을 잘 고수하고 있다.


2018-2 성적표


또 하나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이번학기를 많이 배우면서도 만족스러운 성적으로 마쳤다는 것. 다른 과목이야 그렇다쳐도, 낭만음악세미나는 음악사 전공들의 석박사과목이어서 아 이거는 B+만 건져도 성공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ㅠㅠ 다시 봐도 눈물이 나온다. 가르치시는선생님께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서나 정말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았던 과목이었다. 지식의 희열을 느꼈달까, 살아있음을 실감했달까. 리사이틀이랑 기말발표 시기가 겹쳐서 엄청나게 고생했었는데.. 보람이 있다. 이 때가 노량진의 본격적 시즌이 시작된 3주차였다. 아, 다시 생각해도 여러가지로 정말 힘들었다. 잘 마칠 수 있어서 진심으로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고 뿌듯하다! 좀 창피하기도 하지만, 여기야 뭐 나 좋자고 하는 블로그니 올려놓고 좋아해도 되겠지.  

어쨌든 오늘 느즈막히 일어나서 남편이랑 아울렛에 가서 코트를 한 벌 샀다. 입자마자 이건 내 옷이다! 사야돼! 라는 옷이 있었지만 원가 120만원.. 어쩐지 아름다웠어. 꽤 많이 할인이 들어가도 워낙 비싼 옷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결국 두번째로 마음에 드는 옷으로 픽. 이번주에 친구 결혼식에도 입고 가고,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을 것 같은 옷이다. 


산들해 목동점. 얇은 나무판 위에 상차림이 셋팅되어서 아예 식탁 위에 올려버리심


그 후에 남편이 이건 나를 꼭 먹여야한다며 데려간 산들해 목동점. 삼삼한 가정식반찬이지만 절대 가정에서 쉽게 해먹을 수 없는 (...) 주부의 역할을 못하는 와이프를 둔 덕분에 채소를 잘 먹지 못하는 우리 부부에게 좋은 곳이었다. 1인당 만오천원 선에서 무한으로 반찬 (수육, 간장게장 포함)을 리필해서 먹을 수 있다. 정작 이 집의 캐치프레이즈는 '이천 쌀밥 명가'. 밥 맛있더라.


카페 은스타벅스


그 후에 오늘도 어제처럼 스타벅스에 가서 토닥토닥 글을 쓸까 하다가. 깜빡 잠들어서 타이밍을 놓쳤다. 남편이랑 어쩔까 이야기하다가 그냥 집에서 커피 만들어먹고 차 마시면서 이야기 하기로. 커피는 내가 마실거라 열심히 만들었다. 바닐라 라떼. 카페 진정성 김포점에서 반닐라빈시럽을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한 병 사 왔었다. 자연스러운 단 맛이 고급지다싶었는데 오늘 보니 안에 바닐라빈이 들어있다. 그 카페는 앉을 자리도 안락하지 않은데도 정말 사람이 많았었는데, 점점 왜 인지 더 알 것 같다. 그 날도 매장 직원들의 태도와 눈 맞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아마 또 갈 듯. 그때는 밀크티를 여러 병 사와서 좋은 분들께 선물할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 조명을 켜 두고 남편이랑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 지난 해 6개월정도 교회를 일부러 안 다니면서 내가 느낀 점과, 그 골똘한 고민에 대한 결론. 짧게 요약하자면 나에게 있어서 교회는 신앙인으로서의 학교라는 것. 누군가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을 하지만 나는 홈스쿨을 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학교를 다녀야겠는데 아무 학교나 다니기는 싫다는 것. 쿠키로 말하자면, 생각과 철학을 담은 수제 쿠키를 만드는 집에 가고 싶다는 것. 고로 이리저리 고민해도 새해에는 OO교회로 가야겠다는 것이다.

작년에 제대로 아홉수였는데, 참 좋은 시간이었다. 덕분에 내 삶에서 생각없이 굴러가던 것, 의무감으로 이행되던 일들이 많이 정리되었고 나의 철학과 신념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30살이 되었고, 단순히 나이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측면에서 나는 나를 이제 어른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태어나서 30년이나 지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어린이로서 다 성장했고, 어른 0살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올해의 시간을, 나를 받아들였다. 


시간을 잡을 수는 없지만, 느리게 느껴지도록 할 수 있고, 또한 기록할 수 있고. 그것이 시간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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