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moments

매미가 맴맴 우는 밤, 나의 것을 하자

Pf_Eunice 유니스 2017. 8. 3. 02:51

신설동에 온지 어느덧 이틀째, 내가 정말 오랜만에 휴일을 갖기 시작한지 2주째다. 난 참 오랫동안 휴일이 없던 사람이다. 작년 이맘때 아주 호되게 병치레를 한 이후로 잘 쉬고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 편하게 지내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프리랜서의 특성상 내 마음대로 휴일을 갖기가 참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정말로 오랜만에 한 달간 주 2일이라는 휴일이 생겼다. 이 값진 휴일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고민하다가 여행을 떠났다. 처음에는 속초로, 그 다음에는 안면도로. 오늘은 영화를 봤다.


남편과 영화관을 찾은건 참 오랜만이다. 그동안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아이패드로, 맥북으로 영화를 또는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았다. 그러나 특별히 오늘은 졸업 독주회 선물로 받은 영화티켓이 있어 덩케르크를 관람했다. 크리스토퍼 놀만 감독은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런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첫 영화, 덩케르크. 기대가 컸다.

촬영의 대부분이 아이맥스 카메라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제대로 즐기려면 아이맥스관으로 가야한단다. 그러나 워낙 '뭐가 어떻다더라.', '이렇게하면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는 (​
심지어 잘 모르는) 우리 부부는 뭐든 무리없이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아이맥스관으로 간 덕에 자리가 넉넉한 롯데시네마 건대 스타시티점 2D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평을 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육지에서의 1시간, 바다에서의 1일, 하늘에서의 1시간을 함께 풀어냈다는 것. 심지어 이질감이 없었고 오히려 이를 통해 관객의 흥미를 유지시켜 모두를 덩케르크의 해변으로 끌어들였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영화의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의 반복적인 상황들. 안전하다고 생각한 장소가 계속해서 파괴되고 파괴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개인의 이기심이 팽배해있었던, 안정과 안전을 위해 차지하려고 발버둥치며 얻어낸 공간이 순식간에 불안정하고 불안전한 곳이 되어버리는 것. 어떤 이는 이 영화를 통해 놀만 감독이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덩케르크를 보고 교보문고 강남점으로 옮겨가는 길에 남편과 영화의 감상평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내가 어제 CBS라디오를 듣다가 우연히 듣게 된 락 스타일의 CCM 한 곡 이야기를 꺼냈다. 락이면 락이지 락 스타일은 뭘까. 그 곡은 아무리 들어도 락은 아닌데 비트나 악기는 락 음악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가사는 우리 주님이 쩔고 레알 킹왕짱, 사단은 안습이라는 내용이다. 라디오라서 계속 들었지만 듣는 내내 정말 힘들었, 아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그 분은 그런 음악을 하시는 분도 아니고 그런 언어에 익숙하신 분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곡을 만드셨다. 의도는 알겠다.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
​이제는 아재들에게 친숙한) 언어와 음악을 사용해서 대중성을 높히고 팬층을 확보하겠다는, 대략 그런 마음으로 작곡하여 음반도 내신 것 같다. 흠, 글쎄.

뭐랄까. 한마디로 듣는 입장에서 너무 불편했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과자나 아이스크림맛을 최대한 살려 젤리로 만든 제품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오늘 꼬깔콘맛 젤리를 봤다. 하다하다 꼬깔콘맛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그 과자는 바삭하고 짭잘한데 이를 달콤함의 대명사 젤리로 만들었다니. 물론 취향 문제지만 안 먹어봤는데도 꼬깔콘맛 젤리가 맛 때문에 만든 것 같진 않았다. 마치 젤리 연구원들이 상부의 영업실적과 신박한 성과에 너무 압박을 받은 나머지 안 해본 것을 찾아서 뭐라도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으로 만든 느낌? 이 노래가 마치 나에게 그런 느낌으로 들렸다.

소비자들이 요구르트맛 젤리나 수박바맛 젤리를 좋아했던 이유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젤리로 만들었다니 신기방기'가 아니라 '이 맛이 젤리에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익숙하지만 독특한 맛인데 맛있다'였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꼬깔콘맛 젤리는 '세상에 없던 젤리 만들기'에 꽂혀서 억지로 만들어 낸 느낌이다. 맞다 틀리다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분이 묘하다.


사실 이런 맥락의 컨텐츠들은 요즘 정말 즐비하다. 사실 나 역시 one of them이었다. 뭔가를 할 때 이유가 없었다. 오리지널이 되어야한다고 늘 들어왔고 생각했고 심지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아니었다. 다행히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인 덕에 그 시간들이 창조할 수 있는 어떠한 기반을 만들어주긴 했다. 그러나 사실 발명가가 아닌 이상, 특히 연주자가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재창조의 근처도 못 갔던 것을 몰랐다.

최근에 이런 작업을 해 본 적이 있다. 책을 읽다가 어떤 인상적인 부분이 나오면 책을 덮고 방금 읽은 부분을 다시 짧게 글로 써보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의 재창조다.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니 잘 써지지 않았다. 여태껏 해온 것 처럼 책을 펼친 상태로 그대로 베끼는 일은 참 쉬웠고 그래서 내가 내용과 의도를 안다고 착각했다. 사실 나는 몰랐다. 그리고 모른다는 것을 몰랐다.

놀만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이 된 이유는 그가 영화계에서 시도하지 않은 것을 하려고 혈안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분명 새로운 일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진실로 자기의 세계에 몰입하였고 why를 분명히 알고 그것을 구현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결과물이 우리를 사로잡고 몰입시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이 새롭고 놀라운 이유는 그것이 진정으로 그의 세계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유튜버 Aran의 말처럼 '각 사람은 각각의 세계이고 60억 인구는 60억개의 세계'이다. 그는 그만의, 나는 나만의 각자의 독자적이고 유니크한 세계가 있다. 오늘의 덩케르크가 유쾌했던 이유는, 또 오늘의 CCM이 불쾌했던 이유는 아마도 거기에서 오는 것이리라.

매미가 맴맴 우는 밤, 또 한 번 결심한다. 나의 것을 하자. 매미가 반복해서 우듯이 다시 또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결심한다. 나의 것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