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번째 날 일기 (수정중)
Taize 떼제에서 맞는 두번째 아침이다. 비가 온다. 어제 온전히 떼제의 프로그램을 거의 다 소화했더니 아침에 눈을 제대로 뜨질 못하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결국 아침기도에 못 가고 말았다. 미처 씻지도 못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에는 거의 바게트 두 조각과 버터, 초콜릿 그리고 핫초코가 나온다. 나는 초콜릿을 늘 핫초코에 넣어서 더 진하게 먹는다. 다들 그렇게 안 하는 것 같지만 난 그게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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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나가 밥을 먹고나니 10시가 됐다. 오빠는 다시 big kitchen 으로 일하러 가고 나는 방에 돌아와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여러가지 준비를 하려고 하니 시간이 은근 빠듯하다. 간신히 시간을 맞추어 50분에 source 문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서 Krystelle과 Radek을 만났다. 크리스텔은 50-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프랑스 할머니신데 너무나 귀여우시다. 혼자서 떼제에 처음 오셨고 이미 그녀의 큰 자녀들은 떼제를 다녀갔다고 했다. 성 스테반 호수까지 천천히 함께 내려갔다가 각자 산책을 했다. 오늘도 라딕과 호숫가를 돌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비가 오니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다. 한시간 내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둘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인종도, 국적도 심지어 종교도 (그는 카톨릭이다) 다소 차이가 있는데도 서로 공감이 되고 이야기가 잘 통한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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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니 12시가 되었다. 슬슬 걸어나오면서 사람이 있는지 점검하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화해의 교회까지 천천히 걸어온다. 그는 늘 예배드리는 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나와는 항상 다른 문으로 들어간다. 일을 마친 남편과 교회에서 만나서 자리를 잡고 함께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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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끝난 뒤 남편이 점심을 식당팀과 먹지않고 나와 먹겠다고 한다. 반드시 같이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 줄을 서지 않을 수 있는 benefit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혼자 먹는 것이 신경이 쓰였는지 나와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긴 콩과 감자가 섞인게 나왔는데 제법 맛있다. 여태까지 떼제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남편은 내가 만들었다며 우쭐해한다. 점점 떼제의 음식에 입맛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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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은 뒤 La morada 라 모라다 (스페인어; 거처)에 가서 한국인 수사님과 미팅 약속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이나 내일 오전 중에 한번 다시 체크하러 오라고 한다. 그러겠다고 하고 노래 연습을 갔다.
어제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노래연습을 하러왔다. 특히 흑인 아이들이 많이 왔다. 뒤에 선생님이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학교에서 반드시 할 것을 요구했던 모양이다. 그 아이들이 많이 와서 인지 어제와 다르게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아니나다를까 뒤에서 노래 선생님인 클라우스가 노래할 때 finger snap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는 것)을 하며 장난을 쳤던 모양이다. 그다지 좋지 않은 인상이다. 사뭇 다른 분위기로 노래 연습이 진행됐다. 마침 크리스텔이 내 옆에 앉았다. 프랑스의 학교에서 역사와 지리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크리스텔이 클라우스의 영어를 불어로 통역해주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도 한다. 또 나의 프랑스어 선생님이 되어 발음을 교정해주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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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연습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글을 쓰고 오빠는 한숨 잤다. 1시간 쯤 지나 나도 글을 마무리하고 남편을 깨웠다. 오늘 떼제의 유일한 매점인 오약 OYAK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약은 열리는 시간이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에 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 함께 신나게 오약에 가니 아이들이 바글바글 하다. 나는 카페라떼 (라고는 하는데 우유는 향만 난다), 남편은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음료를 들고 천천히 걸어와 exposition에 갔다.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한국어로 된 책에 눈길이 머문다. 이곳에는 한국어로 된 책이 4권이 있다. 그 중 떼제의 로제수사, 사랑을 선택하다.(choose to love), 샘에서 생기를..(마더 테레사, 로제 수사 공저) 두 권을 구매했다. 또 떼제의 2016-2017 악보도 한 권 구매했다. 남편과 책을 하나씩 들고 저녁식사 전까지 화해의 교회에 앉아 책을 읽는다. 편안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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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줄을 좀 일찍 서볼까 하고 10분 전에 나가니 이미 10대로 인산인해다. 가만보니 전부 흑인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모두 텐트 앞에 서서 빨리 밥을 달라며 소리를 지른다. 내 느낌으로는 거짓말 안 보태고 교도소 창살에 매달려서 소리지르는 죄수들처럼 보였다. 노래연습 때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더 교양없어보이고 너무 같이 있기가 싫었다. 그래서 excuse moi를 연발하며 아이들을 헤치고 나오는데 그들과 같이 있던 동양아이가 내 말투를 따라했다. 갑자기 기분이 확 상해서 굳은 표정으로 “Don’t do that.” 하고 자리를 떴다. 남편과 두고 온 meal ticket도 챙길겸 숙소로 향하는데 너무 화가 났다. 쟤네들은 왜 내가 떼제에 있을 때 와서 저렇게 교양없고 버릇없고 기분나쁘게 행동을 할까. 동시에 그들을 포용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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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진정하고 밥을 먹은 뒤 다시 라 모라다에 갔다. 수사님께 답장이 왔는지 확인도 해야했고 특별히 오늘 source 팀 미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질문은 없는지 혹시 불편하거나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기위해 우리 팀의 리더인 Finn과 Radek이 우리를 소집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두 명의 소년 중 한 명이 오늘 내일 중 떼제를 떠날지도 모르고 다른 한 명 마저 금요일에는 이 곳을 떠난다고 했다. 공석이 생기게되는데 마침 프랑스 소녀의 친구들이 금요일에 온다고 하여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할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수사님께는 아직 답장이 안 왔다. 내일 아침에 다시 가보기로 하고 evening prayer에 참석했다. 오늘은 더욱 의욕적으로 맨 앞에 앉았다. 십자가 바로 앞에서 기도하니 더 잘되는 것만 같다. 맨 앞에는 resérve 라고 적힌 의자와 자리가 있다. 그 곳에 앉은 여자분에게 혹시 기도의자를 써도 되냐고 물어보니 아주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며 안되는 이유를 매우 단호하게 말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기분이 상했다. 심지어 하나는 남는데 왜 쓰면 안된다는거지. 기분이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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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막상 노래를 시작하고 기도를 하니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그런데 우리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음정이 계속 나쁘고 템포가 빨라진다. 캐논을 할 때는 그 분이 너무 빨라지고 음정이 이상하니까 나까지 같이 틀린다. 기분이 나쁘다. 집중이 안되고 방해가 된다. 신경이 쓰인다. 그 분은 자기의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온 마음으로 불렀다. 그러나 듣기에 아름답지는 않았다. 그게 나에게 큰 방해가 되고 내 기분을 망치는 일이 되었다.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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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에 와서 첫날은 너무 행복하고 평화로웠는데 하루하루 지낼수록 나의 나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도, 아주머니도 모두 방해꾼으로 취급하는 내 자신이 싫다. 나의 악한 모습을 자꾸만 발견하는 시간시간들이다. 방에 들어와서도 그 기분을 떨쳐내지를 못한다. 겨우 로제 수사님 책을 마저 읽고 힘겹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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