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7 Paris, France

열한번째 날 일기 (수정중)

Pf_Eunice 유니스 2019. 1. 25. 18:24

해가 났다. 이곳에 온 뒤 줄곧 날씨가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었다. 조금씩 햇빛이 비치는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몰입된 기도와 꿀맛 (치고는 조금 퍽퍽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같은 아침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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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들어 거의 처음으로 해가 나는 날이다. 오늘은 source를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덕분에 Radek과 나는 조금 바빠졌다. 장기체류자인 Vincent from Netherland 와 그의 친구도 source 앞 기도처를 청소하기위해 왔다. 10-20명 정도가 나와 함께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강물을 보고 또 하늘을 바라본다. 잔디밭에 앉은 사람들과 기도처에 앉은 사람들 모두가 기분이 좋아보인다. 평소에는 2-3명이나 심지어 아무도 오지 않을 때도 많았는데 오늘은 60-70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source의 St. Stephan’s Lake 주위에 앉아 햇빛을 맞는다. 행복한 풍경이다. Radek은 드디어 내가 열일할 수 있는 날이 왔다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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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이 훌쩍 지나 벌써 점심기도를 드리러 갈 시간이다. 화해의 교회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어디있는지 찾을 길이 없다. 결국 혼자 앉아 기도를 드렸다. 늘 붙어다니다 처음으로 따로 드렸다. 어느덧 눈에 많이 익은 사람들이라 편안하게 기도했다. 30분 남짓한 기도시간이 다 끝나자 남편이 나를 찾았다. 함께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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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에서 일하는 순례자는 나를 포함해서 총 4명인데 그 중 오후를 담당하는 두 명이 개인사정으로 어제 떼제를 떠났다. 아침에 사람이 많았기때문에 혹시나 일손이 모자랄까 나와 남편이 2-3시 타임을 도우러 가기로 했다. 함께 가서 사진도 찍을겸 카메라도 들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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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도착하니 날씨가 아침보다 좋지않다. 아이들은 노래연습에 갔는지 현저히 적다. 덕분에 사진은 많이 찍었다. 내가 남편을, 남편이 나를 찍어주기도 하고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Radek의 사진도 잔뜩 찍는다. 이 중에서 잘 나온 사진들은 나중에 e-mail로 보내줄 생각이다. 남편은 책을 읽고 나는 사진을 찍고. 따뜻한 오후시간을 보냈다.
방에 와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잠시 생각해보니 내일 수사님을 뵐 때 선물을 드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뭘 드릴 수 있을까. 마침 우리가 한국음식을 제법 넉넉하게 싸왔던 것이 기억났다. 이곳의 밥은 우리랑 조금 다르던데 쌀도 드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가지고 온 한국 쌀과 잡곡, 김, 감잎차(다른 종류의 티는 여기에도 많은 것 같았지만 감잎차가 프랑스 어디에 있겠는가), 카누 블랙커피, 엄마가 넉넉히 싸준 쇠고기고추장과 멸치도 반으로 나누어서 예쁘게 담고 화룡점정으로 우리가 그동안 아껴두었던 탄탄면 두봉지도 넣었다. 수사님이 주신 김치와 탄탄면을 파리에서 함께 먹으면 정말 최고의 맛일 것 같았지만 우리야 다음 주면 한국에 돌아가서 2봉지가 아니라 20봉지도 먹을 수 있으니 당분간 한국 음식을 맛보기 힘드실 것 같은 수사님께 선물로 드리고 가면 좋겠다 싶었다. 전부 담아 우리가 가진 쇼핑백에 넣으니 꽤 양이 된다. 여기에 엽서도 한 장 써서 드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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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캐리어를 열고 방을 다 뒤집어 놓았으니 청소도 하기로 한다. 넉넉히 덜어 수사님 드릴 선물세트를 만들었는데도 한국에서 가지고 온 차와 커피, 그리고 쑥찜팩 같은 자잘한 물건들이 남아있다. 파리에 가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일주일 동안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Radek에게 선물하면 더 좋을 것 같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지퍼백에 이것저것 담아서 한번 넣어본다. 그럴듯하다. 내일 아침에 영어로 설명을 첨부하여 엽서와 함께 주면 좋겠다. 남편과 함께 exposition에 엽서를 사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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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오늘이 마지막 exposition 방문이 될 것 같아 이것저것 더 유심히보며 사진을 찍었다. 수사님과 라덱을 위한 엽서를 고르고 총총 나가려는데 남편이 혹시 목걸이가 갖고싶지 않냐고 물어본다. 떼제의 비둘기십자가 목걸이는 한국에서는 사기 어려울 거라며 원한다면 지금 사라고 한다. 빠듯한 우리 여행에서 사도 될까 싶어서 엄두도 안 냈었는데 남편이 먼저 말해주니 고맙다. 조심스럽게 펜던트 진열장에서 하나 골라본다. 긴 줄과 함께 목걸이를 받아 남편에게 걸어줬다. 당신은 목회를 할 사람이고 나보다 더 떼제의 정신과 기도를 많이 생각해야 할 사람이니 걸고 있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남편이 조금 감동한 눈치다. 내 것을 하나 더 사라고 한다. 다시 와서 사려면 또 몇백만원을 들여야한다며 지금 사는게 이익이라는 재밌는 이야기로 날 떠민다. 못 이기는 척 하나를 더 골라본다. 커플 목걸이처럼 둘이 함께 목걸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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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떼제에서 보내는 마지막 평일이니 그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workshop에 참여하기로 했다. 3가지 주제가 있는데 마침 우리와 시간과 흥미가 맞는 ‘신과 우주’에 대한 토론에 참석했다. 30명 정도 되는 인원에 프랑스어를 모르는 사람은 딱 3명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수사님께서 두 언어로 동시에 말씀하기로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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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신은 없었다. 프랑스어와 영어가 경계없이 바로바로 같은 이야기들을 통역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까지가 불어도 어디까지가 영어인지 구분하기 위해 귀를 굉장히 쫑긋 세우고 있어야 했다. 내용도 쉽지 않았지만 알아 들으려고 온 신경을 다 쏟았기 때문에 굉장히 피곤해졌다. 다음에 올 때는 불어를 어느정도 하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위시리스트를 우리 마음 속에 하나 추가했다. 워크샵이 다 끝나고 어떤 내용인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았지만 남편과 나는 수사님 따봉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국제공동체라 그런지 다들 언어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시다. 어제 신한열 수사님과의 만남에서도 언어의 은사를 여쭤보았을 때 단언코 노력이라고 말씀하셨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한다고 해서 그냥 언어능력을 주시지는 않았을거다. 얼마나 큰 노력과 상황들이 있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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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고 8시에 맞추어 라 모라다에서 열리는 source 마지막 미팅을 갔다. 우리는 다들 흩어져서 개별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3일에 한번정도 이런 미팅을 갖는 것 같다. 그러나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다. source의 일을 담당하는 Frederic from Germany와 Radek 그리고 나, 셋이서 일주일 동안의 일과 떼제의 근황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사이 남편은 수사님과 통화하여 내일 2:30pm으로 약속시간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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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이 끝나자 어느덧 저녁기도를 할 시간이다. 오늘은 특별히 십자가 주위에서의 기도가 있는 날이다. 평소와 똑같이 예배를 드린 뒤 일부 수사님들이 십자가를 가운데로 옮기시면 차례로 원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이마를 대고 기도할 수 있다. 알로이스 수사님과 몇몇 수사님들이 머리를 대고 다른 수사님들은 그 주위에서 십자가를 향해 엎드려 기도하셨다. 그 후 우리에게 개방이 되자 10대 아이들이 우루루 줄을 선다. 저 아이들이 저렇게 변화가 되었구나 싶다. 한번에 10명이 기도하는데 사람마다 각자 충분하다고 느끼는 만큼 기도를 하고 일어서기 때문에 줄이 굉장히 천천히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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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사님께 가서 왜 이런 기도를 해야하느냐 (need) 여쭤보자, 그 분께서는 need의 문제가 아니다, 로제 수사님이 어딘가에서 (말씀해주셨는데 까먹었다) 이 기도를 보셨고 이것이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기에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오고 계시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엎드리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그 말을 듣자 오늘 꼭 이 기도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이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파리에 왔으니 에펠탑에서 사진을 찍어야지.’, ‘개선문은 꼭 가봐야지.’ 같은 생각이었다고나 할까. ‘떼제에서는 이 기도가 매우 유명한데 나도 해봐야지.’ 라는 마음. 수사님 말씀을 듣고 중요한 것은 '이 기도를 하는 정신’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과 나는 매우 천천히 줄어드는 저 줄을 기다리지 않고 방에 가서 우리의 몸과 맘을 편안하게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혹시나해서 오약에서 음료를 한 잔씩 마시고 돌아왔는데도 줄이 줄어들지 않기에 우리는 바로 방으로 가서 평안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