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번째 날 일기 (수정중)
떼제를 떠나는 날이다. 오늘은 주일이라 아침기도가 없고 아침밥과 10시에 성찬미사가 있다. 오늘 먼길 떠나야 하기에 푹 자고 일어나서 아주 깨끗하게 뽀득뽀득 샤워를 했다. 수신(修身)을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파리에 돌아갈 짐을 싸기 시작한다. 일주일 사이에 물건들이 떼제 안에서 각각 자기 자리를 찾아 놓여진 덕분에 나름의 패턴을 만들며 익숙하게 썼었는데, 그런 물건들을 하나하나 다시 트렁크에 넣으니 이사를 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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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싸면서도 정말 떠나는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시 우리의 트렁크를 들고 첫 날을 맞이해야 할 것만 같다. 일주일동안 이 곳에서 정말 집처럼 지냈었다. 일주일 삼시세끼 먹고 자고 성경 나눔에 토론도 하고 게다가 마음의 평화와 위로까지 얻었는데 둘이 합쳐서 120유로를 내고 지냈다. 한국인 청년들의 권장 회비는 (26세, 28세인 우리 기준으로) 약 98-135유로였다. 그 안에서 자기가 낼 수 있는 만큼만 내면 된다. 우리는 처음부터 120유로를 정해놓고 갔고, 더 적게 낼 수도 있었지만 남편의 바람대로 처음에 정한 분량 만큼 내고 왔다. 유럽 어디에서 이렇게 지낼 수 있겠는가. 감사한 일이다. (http://www.taize.f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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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대충 싸고 청소도 대충 하면 매일매일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을 먹으러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 싫다. 아침을 포기하고 남편과 광나기 직전까지 방을 청소한다. 우리가 내는 회비에는 인건비가 없다. 오래 머무는 장기체류자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로 이곳에 있다. 장기체류자들의 연령은 19-30세 사이인데 19-24세 비율이 가장 높은 것 같다. 그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대학을 가지않고 이곳에 6개월에서 1년 가량 머물며 내 인생에 주신 주님의 소명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 친구 Radek은 남편과 동갑이지만 모든 직장과 활동을 멈추고 4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원래는 Easter 부활절까지 6개월 정도 머물 계획이었지만 2월과 9월 중 선택해야하는 상황을 만나 돌아오는 금요일에 폴란드로 갑작스레 돌아가게 되었다. 왜 9월까지 머물지 않냐고 물어보니 그때까지는 너무 길단다. 자기는 어린 친구들처럼 오래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돌아가서 job을 구해야된다고 했다. 새 직장을 구하면서 부활절 즈음 순례자(단기 체류자)로 와서 지내다 갈 생각이란다. 버스로 떼제를 왕복할 수 있는 거리에 살다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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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포기하고 청소를 한 보람이 있다. 방이 우리가 처음 올 때 처럼 깨끗해졌다. 옷장 문과 창문, 방문을 활짝 열어두고 길을 나선다. 우리에게서 자연스레 나오는 마늘냄새도 있고 방에서 김치도 먹었었기 때문에 환기를 단단히 해 둘 목적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스멜(냄새가 아니라 이렇게 써야한다. 스멜~)을 부정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다음에 올 순례자에게 떼제의 첫 이미지를 김치향으로 안겨줄 순 없다.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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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덜컹덜컹 끌고 왔던 길을 지나 다시 big tent에 짐을 둔다. 성찬미사가 끝나면 떠날 아이들의 짐이 한가득이다. 주차장에는 커다란 고속버스가 이미 여러 대 와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두 오늘 떠난다. 그러면 오늘 또 새로운 사람들이 떼제를 찾아 와 빅텐트에 짐을 놓고 각자의 숙소를 배정받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다시 이곳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 된 듯 기쁜 마음으로 짐을 풀고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을 하며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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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5분. 미리 화해의 교회에 들어갔다. 한 수사님이 오르간을 연주하신다. 바로크 시대로 추정되는 오르간 곡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안정이 된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남편에게 이것저것 설명 해 주기도 한다. 9시 50분. 라덱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 정말 고마웠다며, 또 언젠가 떼제에서 만나자고 악수를 나눈다. 10시. 헤어질 시간이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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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는 조금 다른 노래, 다른 양식으로 미사가 진행된다. 가톨릭의 전례대로 진행되는 미사. 그러나 비신자들도 참여할 수 있게 떼제식으로 조금 바꾸었다고 한다. 지금 떼제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마을사람들이 함께 참여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리듯 그들도 여기에 와서 미사를 드리는 듯 하다. 10시 26분.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다. 미사에 방해되지 않게 살짝 빠져나와 짐을 챙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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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zé communaté 버스 정류장에 이미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 여러 명 나와있다. 다함께 우리의 만남을 기념할 만한 사진을 찍는다. 얼른 이메일주소를 물어보고 그 자리에서 사진을 바로 보낸다. 이 사진들이 우리가 만났었고 또 그 만남이 매우 유쾌했다는 사실을 아름답게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바로 여행 사진을 정성들여 찍고 기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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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머물렀던 한국인 네 사람이 한 버스에 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 내리는 버스 정류장이 달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지만 조금 얘기를 나누다보니 서로 아는 사람도 많고 통하는 이야기도 많다. 서울에서 한번 만나 의기투합 하기로 했다. 클래식 연주자들과 학생들 사진을 찍는 언니들과 음악 공부를 하는 나, 그리고 언니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테니스와 악기 연주의 재능이 있는 남편. 종종 보게 될 일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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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언니들과 재밌게 이야기하며 가는데 저만치서 아는 얼굴이 보인다. 첫 날 이야기를 나누었던 Spencer from Canada다. 떼제에서는 활동하는 시간대가 달라 거의 만나지 못했고 그는 금요일에 근처 마을 Cluny에서 일이 있어 일찍 떠났었는데 우연히 다시 만났다. 다가가 인사를 한다.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탄단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기차를 탔다. TGV 떼제베가 아닌 기차는 이번이 처음이다. 좌석이 지정되어있는 떼제베와 달리, 기차는 1등석, 2등석 범위 안에서 자유좌석이다. 조금 허름하지만 안락한 테이블 자리에 셋이 둘러앉았다. 마주보며 앉자니 이런저런 이야기 주제가 나온다. 떼제에서의 경험과 캐나다의 메이플 시럽, 차이나타운, 북한과 한글까지. Mâcon에서 Paris로 가는 4시간이 금방 갔다.
Paris Bercy역에 도착했다. 이제 우리가 각자의 길을 가야할 시간.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이메일 주소를 나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스펜서가 고맙다. 함께 지하철을 탔다. 몇 개의 역을 지나는 동안 그의 낡은 가방을 보니 책으로 가득하다. 로제수사님과 영성에 대한 책들. 그러고보니 그의 긴 머리는 암 여환우들을 위한 가발 만들기에 기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4월에 지금 하는 일이 끝나면 레바논에서 구직을 할 예정이란다. 이미 프랑스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기 전 이집트에서 1년 간 일했던 그다. 남편과 나에게 큰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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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와 헤어지고 우리도 새로운 숙소를 향해 간다. Ranelegh역. 그 앞에서 새로운 호스트의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역에 도착해서 1번 출구로 나갔다. Avenue Mozart 모차르트 길이다. 우리 숙소는 Avenue Leopold 2 레오폴드(모차르트의 아버지) 2세 거리에 있다. 이 정도면 정말 그 Mozart를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살짝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넉넉히 둘러보고 호스트의 어머니를 만나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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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좁은 문, 좁은 통로, 좁은 엘리베이터. 최대 2인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에 두 개의 트렁크와 내가 탔다. 몸조차 돌릴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덜컥 겁이 났다. 내가 구한 숙소였다. 사진과 다소 다른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6층에서 남편과 호스트의 어머니와 조우하여 두 층을 다시 걸어올라간다. 계단이 좁다. 마침내 방에 도착하자 길게 설계된 공간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쇼파베드, 부엌, 샤워부스가 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한 그녀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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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고단한 몸을 일단 쇼파베드에 뉘인다. 사진과 비슷하지만 이미지가 다소 다른 방 풍경에 나는 당황스럽다. 그러나 떼제에서 배워온 것이 있었다. 소박한 아름다움. 디테일의 중요성과 태도. 나는 벌떡 일어나 짐을 풀기 시작한다. 일요일부터 금요일 아침까지 5박 6일을 지낼 곳. 우리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방을 슥 보고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정하여 우리의 물건들을 배치하기 시작한다. 다 하고 보니 그럴듯 하다. 마지막으로 Radek에게 받은 Source 사진이 담긴 카드를 창가에 장식하니 비로소 우리 공간이 된 느낌이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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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습을 보고 남편이 기운을 내어 요리를 한다. 냄비밥에 김치, 카레에 엄마표 멸치와 김까지 뜯어 떼제에서 잘 지내고 파리로 돌아온 것을 자축한다. 유럽에 와서 우리는 늘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직접 요리를 해 먹었다. 그 쪽이 훨씬 믿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에서의 우리의 생활을 비추어본다. 남편은 집밥을 잘 챙겨먹으며 다녔던 반면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많은 돈을 먹을 것과 커피에 쓰고 정기적으로 몸이 아프고, 그러면 다시 병원에 가서 돈을 쓰는 악순환을 반복했었다. 이곳에 와서 지낸 3주 동안 나는 몸과 마음이 매우 건강해졌다. 늘 스트레스 받고 시간에 쫓기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계속해서 달리기만 했던 지난 날들이다. 소박한 음식들을 먹고 많이 걸으면서 나는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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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다 먹고나자 떼제의 저녁기도 시간이다. 떼제의 노래들을 틀어두니 그 시간과 공간이 그리워 눈물이 났다. 남편이 나를 다독인다. 언제까지나 떼제에서 살 수는 없다. 일상으로 돌아와 떼제에서의 정신을 이어가야한다. 나는 그렇게 파리로,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