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번째 날 일기 (수정중)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스케줄이 있는 날이다. 오늘은 많이 무리하지 않고 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오기로 했다. 며칠 전 남은 쌀을 탈탈 털어 냄비에 밥을 했다. 그 냄비에 남은 누룽지로 숭늉을 끓이고 밥에는 고추장과 계란 후라이를 야무지게 비벼 아침을 먹는다. 우리는 지금 에너지가 거의 소진되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잘 먹어야 한다.
배를 든든히 하고 까르푸에 갔다. 선물을 안 살 계획이었지만 여기서 먹은 과자와 치즈들을 나누고 싶다. 여기서 먹은 본마망 타르트쿠키가 나에겐 정말 감동이었다. 작은 치즈포션과 여러 가지 주전부리를 사러 까르푸 시티가 아닌 대형매장으로 갔다. 파리에는 대형 까르푸가 우리의 조사에 의하면 3개가 있는데 그 중에 2개를 야무지게 이용했다. 확실히 가짓수가 많고 조금이라도 더 싼 경우가 왕왕 있다.
30분 정도 걸어가며 몇 명을 챙겨야 할지 세어본다. 쉽지 않다. 누구를 챙기면 누구는 안 챙길 수가 없고 그렇다. 냉정하지만 관대하게 우리의 여행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해주신 분들과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어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메모에 적는다. 대략 20명 정도다. 그동안 한 푼 두 푼 아껴가며 여행했는데 이제 쓸 시간이다.
새로운 마트에서는 어떻게 진열되어 있는지를 늘 몰라서 헤맨다. 오늘도 여지없이 헤맸다. 덕분에 어떤 선물이 좋을지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촘촘히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큰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박물관에서 배웠다.
과감하고 세심하게 먹거리를 고른다. 가격과 맛, 선물 받을 사람의 기분, 직접 먹어본 우리의 경험을 모두 종합해서 장을 봤다. 꽤 많은 양이다. 다 들고 갈 수 있을까? 한국에서 가져 온 장바구니와 우리의 가방을 총 동원하여 짐을 정리한다. 너끈하다. 장바구니는 정말 잘 가져왔다.
생각보다 꽤 많은 돈을 썼는데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래도 비용이 예산을 넘어 조금 우울해하는 나를 남편이 달랜다. 우리가 지금 몇 명을 위해 돈을 썼는지 생각해보면 아주 가치 있는 돈을 썼다고. 우리가 앞으로 계획하는 일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나를 일깨운다. 남편의 말이 맞다.
사실 한국에서는 참 쉽게 장을 봤다. 물건 하나하나를 고르는 데에 별로 고민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야하니 하나를 가지고도 수십 번 고민한다. 기회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어느 쪽이 더 행복할 것 같은지 물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다 해보니 후자가 훨씬 행복하다. 미래의 나를 괴롭히지 않고 현재의 나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면서 내가 선택한 것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장을 본 뒤 바로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우리 숙소 바로 앞 정류장에 내렸다. 노선이 기가 막히다. 오늘 느낌이 좋다. 짐을 내려놓고 환승 제한시간(탑승부터 1시간 반)에 맞추어 다시 버스를 타고 파리 시청으로 향한다.
파리시청에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맥도날드다. 와서 안그래도 한번 정도 맥도날드를 먹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인가보다. 신나게 맥도날드로 향한다. 프랑스 맥도날드에는 easy order라는 신기한 시스템이 있다. 마치 지하철 표를 사듯이 햄버거를 주문하면 카운터에서 줄 설 필요 없이 바로 받을 수 있다. 우리도 한 번 이용해보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별로 안 easy하다. 심지어 우리 카드로는 결제도 잘 안 된다. 카운터에서 다시 한 번 결제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어쨌든 잘 주문해서 받았다.
프랑스 맥도날드는 프렌치후라이 말고도 웨지감자를 선택할 수 있고 소스도 케찹외에 사과마요네즈를 선택할 수 있다. 둘이서 하나씩 세트를 주문하면서 두 가지 옵션을 고루고루 선택해보았다. 약간 시큼한 맛이다. 빅맥도 소스가 약간 더 새콤한 것 같다. 마트의 감자튀김에도 식초 맛이 있고 우리 숙소에 남겨져있던 드레싱도 신 맛이고 맥도날드의 소스들도 좀 더 신 걸 보니 이 곳 사람들의 식성인가보다. 남편이 시킨 280 오리지널이라는 버거는 패티가 두툼하고 재료가 단순한 대신 빵이 파니니다. 빅맥보다 훨씬 맛있다. 단순하지만 제대로 된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둘이 합쳐 17유로(maxi 기준)가 나왔다. 우리가 프랑스에 와서 지출한 식사비용 중 가장 비싸다. 그래도 다른 식당에 가면 한 사람당 적어도 15유로 이상은 생각해야 될 거다. 맛도 가격도, 만족한다.
잘 먹고 힘을 내서 퐁피두센터에 갔다. 배관들이 밖으로 나와있다. 현대미술관 답게 외관도 내부도 아주 현대적이다. 하나하나 둘러보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하면서 이런 작품들을 만드는지 범인인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가장 인상적인 제목은 캔버스에 못 하나가 박혀있는 작품의 것이었다. ‘누가 이 못을 심었을까? 나도 몰라.’ 프랑스어로 된 제목을 번역기로 두 번에 나누어 돌렸는데 두 번째 문장을 치고 나도 몰라가 나왔을 땐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지나가던 프랑스 어린이들도 그 제목을 보면서 깔깔 웃었다. 다들 느끼는 바는 똑같다. 반면 내용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용의자다. 14명의 10대들의 증명사진이 쭉 늘어져있다. 그게 다다. 그런데 설명을 보니 이 중 7명은 의인이요, 7명은 끔찍한 살인용의자란다. 당신은 이들 중 용의자를 찾을 수 있겠냐는 것이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였다. 머리를 딩 맞았다. 충격을 받고 다시 한 번 보는데 도저히 못 찾겠다. 작가는 답은 알려주지 않았다. 충격적이다.
위에 언급된 이런 최근의 작품들도 있지만 현대미술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피카소, 칸딘스키 그리고 마르셀뒤샹의 ‘샘’과 같은 작품들도 있었다. 뒤샹의 샘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1학년 첫 중간고사에 논술로 나왔던 문제다. 레디메이드라는 것이 그 당시에 엄청나게 충격적인 발상이었단다. 그 당시에는 어떤 한 물건은 그 물건을 사용하는 장소에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뒤샹은 화장실 변기를 떼와서 갖다놓고 이걸 샘이라고 했다는 거다. 이미 누군가가 만든 물건에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역할을 주는 것. 그게 그가 미술계에 던진 큰 충격과 화두였다. 그 이후로 오브제의 사용의 지평이 넓어졌다고 했다. 그 때는 시험이라서 그냥 달달달 외웠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대단한 일상의 탈피다. 인간은 익숙함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심지어 그걸 느끼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것을 깨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그걸 깬다. 그리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예술가들이 이 땅에 필요한 이유다. 창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럼 나처럼 누군가가 이미 창작한 작품을 재해석해서 연주하는 사람은 어떠한가.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성진은 왜 대단하게 여겨지며 박수를 받는 걸까. 쇼팽콩쿨은 왜 몇 십 년 동안 계속되는 걸까. 우리는 재해석하는 사람들인가 그저 반복하는 사람들인가. 우리가 몸을 담은 이 분야에 의미가 있다면 왜 음악대학은 점점 사라지는 걸까. 창작을 하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를 예술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예술가의 정의는 무엇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람마다 다 대답이 다를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질문들을 모아서 함께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에너지가 다 소진될 때까지 작품들을 보다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휙휙 지나쳤다. 전통 회화작품들보다 더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이곳에서 우리의 뇌용량과 에너지는 결국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도 의미가 있었다.
생트샤펠로 걸어간다. 시테섬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서울의 여의도 같은 파리의 시테섬. 이곳에 생트샤펠, 콩시에르주리(감옥), 법원, 노트르담성당과 같은 굵직한 건물들이 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해서 잔뜩 기대하고 간 생트샤펠에서 나는 다른 의미에서 눈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생각보다 작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찬 스테인드글라스. 아주 작은 그림들로 하나하나 성서의 이야기를 담은 성화들. 그런데 너무 작고 빽빽했다. 내가 약간의 환 공포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생트샤펠에 들어가니 공포에 질렸다. 너무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오래 쳐다볼 수가 없다. 너무 작은 그림과 원들이 빽빽하게 차 있는 이 공간에서 내가 확실하게 이런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 두 장을 겨우 찍고 남편을 붙잡아 제발 나가자고 했다. 남편은 내가 굉장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놀란 눈치다.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예상 외로 빨리 끝난 생트샤펠에서의 일정 때문에 시간이 남는다. 옆의 콩시에르주리에 가기로 했다. 이곳에 수감된 유명한 사람으로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있다. 전시관의 대부분이 그녀가 이곳에 머물렀고 이 옷을 입었으며, 머리카락이 여기에 남겨져있고 마지막 정리를 한 뒤 처형을 위해 나갔다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처형했는데 꼭 그 사람을 기리는 것만 같은 전시컨셉에 어리둥절하다. 어제 루브르에서 본 루이 14-16세 시절의 궁정의 가구와 인테리어들과 콩시에르주리의 감옥 풍경이 오버랩 된다. 일평생을 그런 화려한 곳에서 산 사람이 생의 마지막에 이곳에서 끔찍한 죽음을 기다리는 기분은 어떤 걸까. 처형 전 날 내일 어떤 일이 있는지 설명을 듣는 기분, 공개적으로 끌려 나가 지탄받으며 단두대에 목을 대는 기분. 그리고 그 순간. 감정을 이입하여 상상해본다.
콩시에르주리에서 나와 노트르담성당에 다시 들렀다. 혹시 미사를 할까 싶어 안에 들어가 본다. 기미가 없다. 다시 그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성당 안에 앉아 남편과 두 손을 맞잡았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아무런 사고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주신 그 분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단 한 대의 교통편도 놓치지 않고, 아무 것도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은 것 없이 무사히 일정을 마쳐가고 있는 시점이다. 참 감사하다. 정말 좋은 여행이었다.
나와서 성당 옆 박물관 crypte archéologique에 갔다. 파리의 역사를 살피며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저번엔 뮤지엄 패스가 없어 지나쳤지만 오늘은 들렀다. 프랑스는 옛 것을 기억하고 그 토대 위에 자신들의 역사를 이어가려는 민족성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사자성어지만 온고지신을 잘 실천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의 경복궁 광화문이 생각나며 조금 아쉬워진다. 공사 전의 광화문이 좋았다. 지금 광화문은 너무 현대적이다.
짧게 박물관을 들렀다 나와서 마지막 일정을 하러간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자 유럽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다. 신혼여행 답게 퐁 뇌프에 가서 자물쇠를 걸기로 했다. 세느강변으로 내려가 강을 따라 걷는다. 유람선을 탄 사람들이 지나간다. 강을 따라 앉은 커플들을 지나며 우리는 오늘을 기억하기 위한 우리만의 동영상, 그리고 훗날 태어날 아이에게 보여줄 영상편지를 찍었다. 몇 년 뒤에 보면 어떨까.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퐁 뇌프에 도착했다. 우리 자물쇠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자물쇠기 때문에 뒷면에 붙일 스티커를 준비했다. 정성껏 스티커를 붙이고 자물쇠를 건다. 남편이 감격해한다. 자기가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자물쇠를 걸게 될 줄 몰랐단다. 언젠가 다시 와서 볼 수 있을까. 우리 스티커가 참 떼고싶게 생겼는데 괜찮을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 자물쇠가 잘 보존되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곳에서 또 하나의 상징적인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왔을 때 스티커가 없어도, 자물쇠가 없어도, 아니 이 다리의 펜스가 없어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중요한건 내가 이 순간 정성껏 이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게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해도, 아니 그 일을 한 사실조차 잊혀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다 괜찮다. 우리는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여행을 자축한다. 엊그제 장을 봐둔 스테이크와 남은 재료들을 탈탈 털어 내가 요리를 한다. 잘 정돈된 작은 숙소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이번 여행에서 각자의 베스트 컷을 한 장씩 꼽아본다. 안 해 본 많은 것들을 이번 여행에서 함께 했다. 연애부터 결혼생활까지 중 가장 오랜 시간동안 떨어지지않고 함께 붙어있었다. 앞으로 인생도 이렇게 같이 살자고 약속한다. 나에게 없는 것을 너에게 주고, 너가 부족한 것을 내가 채워주면서 그렇게 살자고. 내일까지 무사히 잘 지내다가 건강하게 서울로 돌아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며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냈다.